대학에서 2월 28일은 사회의 12월 31일과 같다. 두리번거리는 신입생들로 3월 초 대학은 비로소 새해를 맞이한다. 조금 지나면 겨울 빛깔이 남아 있는 목련꽃이 소리 없이 고개를 내밀 것이고, 어디에 그 많은 양의 색소가 숨어 있었는지 캠퍼스 곳곳은 노란 개나리로 봄을 알릴 것이다. 진달래도 숨어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고, 벚꽃까지 흐드러지면 짐짓 점잔빼는 듯한 겨울 산의 무채색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여기에 신입생이 있기에 산을 품은 대학의 봄은 더욱 생기가 넘치고 기쁘다.
이렇게 평화와 여유가 넘치는 대학이지만, 최근 대학 안의 차별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으로 작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한 대학 소속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 수십 명은 학내 의결권 행사, 각종 수당, 임금, 승진 등의 처우에서 정년계열 전임교원보다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이 학내 구성원이자 교수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총장 후보자 추천 및 대학의 학칙 제·개정에 참여하는 대학평의회와 학교 운영에 대한 중요 사안을 심의하는 교수회의에서 모두 배제되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가족수당, 자녀학비 보조수당, 후생복지비는 해당 사업장에 고용된 모든 근로자에게 똑같이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보수이고, 성과상여금은 직전 학년도의 성과와 업적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연 1회 지급하는 성격의 보수이므로 대학이 진정인들에게 이런 수당 등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인권위는 대학 측에 대학평의회와 교수회의 등 학내 의결권 행사에서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후생복지비 등의 수당 지급에서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과 정년계열 전임교원 간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참으로 놀라운 결정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학의 구조개혁과 학령인구 감소 등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계약제 교원 임용을 허용함에 따라 대학이 전임교원을 정년트랙과 비정년트랙으로 나눠 운영하는 것은 나름대로 고육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권위도 지원 자격에 따른 기본급의 차이나 정교수 승진제도의 존재 여부는 합리적 차별이라고 봤다.
그러나 교수 지원 자격과 상관없는 가족수당, 자녀학비 보조수당 등은 가족과 자녀가 있는 전임교원이라면 정년계열이든 비정년계열이든 차별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총장 후보를 추천하는 교수평의회나 교수의 근로조건과 교육활동에 관한 사항을 의결하는 교수회의에 비정년계열이란 이유로 참여 자격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도 합리적 차별이라 할 수 없다.
인권위가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의 학내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시정 권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20년이 넘도록 교수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던 수많은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들의 체증을 뚫어준 결정이다.
차별은 당해보지 않으면 그 서글픔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전임교원임에도 교수회의 참석 자격이 없는 교수라는 딱지가 붙을 때 받았을 마음의 상처,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도 자녀수당을 받지 못할 때 무너진 부모의 자존감은 교육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해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대학은 서구의 중세 대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학도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학 공동체 안에는 교수, 학생, 직원 등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 안에 다시 정년·비정년 트랙, 정규직·비정규직, 계약직·파견근로직, 본교·분교(캠퍼스) 등 다채로운 봄철 산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집단이 공존하게 됐다.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도 있지만, 차별과 배제로 흘러 인간의 존엄을 해칠 때는 단호히 맞서야 한다. 그것이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기관에서 행해진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대학의 비정년 계열 전임교원에 대한 차별을 시정 권고한 인권위 결정을 환영하고, 나아가 차별을 개선하려는 대학 당국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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