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응해 한층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섰다. 반도체 등 하이테크 제품의 러시아 수출을 통제하고 러시아의 4개 주요 은행을 제재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포괄적인 제재 방안을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강력히 비난하고, 러시아의 행동에 책임을 묻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강력한 제재 방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이번 제재는 바이든 정부가 사흘 연속으로 내놓은 조치로, 앞서 밝힌 단계적 제재를 본격화하고 나선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 전쟁은 푸틴이 선택했다"면서 "러시아의 침공은 묵인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이 당면할 결과가 한층 가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제재는 러시아의 주요 금융기관을 비롯해 항공우주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직접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출 통제 등이 골자다. 푸틴 대통령 측근을 비롯, 러시아 지도층 인사에 대한 추가 제재도 포함됐다. 전날 저녁 러시아가 동·남·북 세 방향에서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하기 시작한 후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화상 회담을 거쳐 이번 제재안을 내놨다.
이번 제재로 러시아에서 가장 큰 스베르방크와 VTB 등 두 은행을 포함한 90여 개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거래할 수 없게 된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러시아 금융 기관들은 전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460억달러(약 55조4070억원) 규모의 외환 거래를 수행하고 있고, 80%가 미국 달러로 진행된다. 자산 기준 러시아 전체 은행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 두 은행에 대한 제재로 이 같은 거래가 대부분 불가능해졌다는 게 재무부의 설명이다.
핵심 제재 대상에는 러시아 3위 금융기관이자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회사인 가즈프롬과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는 가즈프롬방크를 비롯해 7위 은행인 오트크리티예, 민영 금융기관으로는 세번째 규모인 소브콤방크, 러시아 국방 관련 핵심 금융 기관인 노비콤방크 등도 들어갔다. 오트크리티예와 소브콤방크, 노비콤방크 등 3개 금융기관의 자산을 합치면 800억달러(약 96조3600억원)에 달한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해당 지역에 군대를 보낸 직후인 지난 22일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VEB와 방산지원특수은행인 PSB, 이들의 자회사 42곳을 제재 대상에 올리고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미국 기업과 거래를 정지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 및 정부 핵심 인사, 그들의 자식들에 대한 추가 제재도 이뤄졌다.
세르게이 보리소비치 이바노프 러시아 연방 대통령 환경보호교통 전권 특별대표와 그 아들, 니콜라이 플라토노비치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 및 그 아들, 러시아 반(半)국영 통합 에너지 회사인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인 이고르 이바노비치 세친과 그 아들 등이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조치에 27개 유럽연합(EU) 및 G7 회원국들이 동참할 것이라면서 러시아에는 장기적인 영향을 최대화하고, 유럽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군대를 집결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기 시작한 초기 단계부터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가혹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향해 누차 경고를 보낸 바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인테르팍스 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자국 주요 기업인들과 한 면담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군사작전)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이라면서 "우리에겐 달리 행동할 여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엔 달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없는 그러한 안보 위협이 가해졌다"고 군사작전 개시를 정당화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