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는 일본은행 총재, 재무부 장관,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인물임에도 국제 금융계에서 종종 언급되는데, 1929년 세계 대공황 와중에 양적완화의 원조에 가까운 정책을 구사했고 결과적으로 일본이 다른 국가에 비해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를 회복시킨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 시절 그의 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버냉키가 시행한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 아이디어가 당시 정책의 현대적인 해석과 연관되기도 한다.
다카하시는 디플레이션과 대공황에서 일본 경제를 탈출시킨 것으로 유명하지만, 현재 급격한 물가 상승과 함께 인플레이션이 불붙고 있는 우리와 미국의 여건, 그리고 양적긴축과 기준금리 인상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그가 구사했던 인플레이션 대응이라는 또 하나의 정책 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대공황 이전에도 이미 재무부 장관을 지낸 다카하시는 1931년에서 1936년까지 이누카이 쓰요시, 사이토 마코토, 오카다 게이스케의 3개 내각에 걸쳐 다시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일본 경제지표에 따르면 다카하시가 정책을 시행하기 이전 대공황이 일본을 강타했던 1930~1931년 물가상승률은 -10%대의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로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러나 다카하시의 경제정책 이후 그가 암살되던 1936년까지 평균 1.5%의 안정적인 물가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은 6%대로 추정하는데, 대공황 가운데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는 결국 물가 상승 압력에 부딪힐 수밖에 없어서, 다카하시는 정책 전환의 시점을 고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공적인 양적 완화를 통해 일본 경제를 회복시킨 이후에는 다카하시가 유동성 공급을 축소하고 재정 규율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데, 현대적인 개념으로 보면 일종의 양적긴축과 재정 건전성 강화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물가 상승 압력을 제어하려면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시행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를 현대 경제학 개념에서는 통화·재정 정책의 비대칭성이라 지칭한다. 즉,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며 재정을 푸는 것은 상대적으로 저항이 적지만,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흡수하며 재정 지출을 제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인기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유동성 공급과 재정 지출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자 다카하시는 정부 지출을 축소하는 긴축으로 정책을 선회한다. 특히 정부 예산에서 군비 지출을 줄이는 데 군국주의로 향하던 일본 군부의 저항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일본 군부 강경파인 황도파(皇道派) 청년 장교들이 2·26 사건 와중에 당시 재무부 장관인 다카하시를 살해한다. 적절한 시점에 재정을 규율하고 긴축 정책으로 지출을 제어하려던 다카하시가 사라진 일본은 군국주의 세력에 의한 팽창 재정과 관리되지 않은 유동성 증발(增發)과 함께 전쟁의 파국적 결말로 달린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제어하는 긴축 과정에서 강력한 저항에 시달린 것은 비단 군국주의 시대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강력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미국에서도 이를 제어하기 위해 유동성을 흡수하는 기준금리 인상 과정에서 이를 주도하던 Fed 의장 폴 볼커는 엄청난 저항에 시달린다. 그는 1979년 8월 Fed 의장에 취임하는데 1979년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3%, 1980년에는 13.5%까지 치솟고 있었다. 이에 따라 취임 당시 11%대였던 기준금리를 1981년에는 20%대까지 높여 강력히 유동성을 흡수하며 1983년에는 3%대 이하로 물가를 잡게 된다.
그러나 대중에 영합하지 않고 원칙에 입각한 중앙은행 총재로 소임에 충실하던 볼커 의장은 시위와 엄청난 정치적 압력에 노출됐고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그만큼 경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정책은 때로 인기가 없지만,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정책 담당자들이 있었고 그런 인물이 역할을 하던 미국과 그런 인물이 사라진 일본이 그 이후 다른 길을 간 것이 놀랍지 않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물가 상승이 국민의 생활고를 짓누르는 시점이기에 경제 원칙에 입각한 정책당국자의 판단과 소신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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