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청년층 부채를 키운 요인으로 두 가지를 지목했다. 하나는 내집 마련을 위한 주택담보대출 증가, 다른 하나는 투자 목적의 신용대출 증가다. 한은은 “청년층의 차입 레버리지 확대를 통한 자산 구매는 예기치 않은 조정 위험에 취약할 수 있다”며 “부채 부담이 건전한 소비활동을 제약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모바일에 능숙, 더 쉽게 빚투”
한국은행에 따르면 2030세대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458조원으로 전체 가계대출(1705조원)의 27%를 차지한다. 청년층 빚 가운데 32%(150조원)는 다중채무자들이 진 악성 부채로 평가된다. 코로나 이후 1년 반 동안 은행권 가계대출이 평균 14.8% 증가했지만 20대는 35.2%, 30대는 23.7% 급증했다. 청년 빚이 불어난 속도가 두세 배 빨랐던 것이다. 같은 기간 국내 10대 증권사의 20~30대 신용융자 이용자 수는 2만6216명에서 5만4554명으로 두 배가 됐다. 모바일뱅킹과 핀테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이들은 과거의 청년들보다 ‘빚투’에 더 쉽게 접근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젊은 층은 집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출을 늘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의 31.0%, 서울 아파트의 41.7%를 20~30대가 매입했다. 역대 최고 비중이다. 청년층은 전세자금대출의 핵심 수요층이기도 하다. 전셋값이 매매가와 덩달아 뛴 탓에 20~30대의 전세대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도 2019년 30.5%, 2020년 29.5%, 2021년 상반기 21.2%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내집 마련 타이밍을 놓친 이들은 주식·코인 시장에서 ‘레버리지 투자’에 뛰어들기도 했다. 1년째 암호화폐에 투자 중인 회계사 윤모씨(30)는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가 10억원이 넘는데, 전문직 연봉으로도 매매하기 어렵다”며 “투자가 내집 마련의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의욕은 높은데 막상 수익률은…
하지만 ‘묻지마 투자’와 ‘단타’ 등의 성향 때문에 원금 손실에 이자 부담까지 떠안는 20~30대가 적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코로나19 국면의 개인투자자: 투자행태와 투자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이하 투자자의 하루 거래회전율은 16.9%로 전체 개인투자자(6.8%)의 2.5배 수준이었다. 거래회전율이란 하루 동안 매수대금과 매도대금의 평균을 주식 보유금액으로 나눈 값이다. 즉 거래회전율이 높을수록 단기적이고 투기적인 투자 행태를 보인다는 뜻이다.암호화폐거래소 고팍스가 지난해 연령대별 거래 현황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20대의 하루평균 거래횟수는 3.13회로 전 연령대 중 1위였다. 반면 40대는 0.29회에 그쳤다. 자산(현금+코인) 보유액은 20대 528만원, 40대 3940만원으로 7.5배 격차가 났다. 지난해 코인 시장에선 ‘이름이 예쁜 종목 매수하기’가 유행하기도 했다.
“2030세대, 취약차주 비중 높아”
청년 빚투족은 ‘회색 코뿔소’에 취약한 계층의 하나라는 점에서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통계 지표를 보면, 청년층의 재무건전성에 표면상 큰 위험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비교적 저금리인 1금융권 대출 비중이 70% 정도로 높은 영향이다. 다만 청년층은 다중채무자, 저소득, 저신용 등 이른바 ‘취약차주’의 비중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특성이 있다.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청년층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연소득에서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1분기 35.7%에서 지난해 2분기 37.1%로 꾸준히 상승했다. 원금분할상환을 요구하는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20~30대가 많이 이용한 영향이다. 전체 가계부채의 DSR은 36% 선을 유지하는 반면 청년층 DSR은 시중은행의 규제 수준인 40%에 조금씩 가까이 붙고 있다.
청년층은 중장년층에 비해 재산이 적고 소득도 낮기 때문에 충격이 발생하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투자에 뛰어든 2030세대는 부동산, 주식, 코인 등이 오르는 것만 봤지 장기간 침체되거나 횡보하는 상황은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회색 코뿔소와 블랙스완
미국의 경제분석가 미셸 부커가 2013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향후 발생할 개연성이 높고 파급력도 크지만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위험을 뜻한다. 몸집이 큰 코뿔소가 멀리 있어도 눈에 잘 띄고 진동만으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지만 갑자기 달려들기 시작하면 두려움 탓에 얼어붙거나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서 예측이나 대비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을 의미하는 ‘블랙 스완’과도 차이가 있다. 9·11 테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블랙 스완이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회색 코뿔소로 볼 수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경제전문가 간담회에서 “그동안 회색 코뿔소로 비유되던 잠재 위험이 하나둘씩 현실화하고 있다”며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회색 코뿔소를 도발하는 방아쇠가 해외에서 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 경제의 무역 의존도가 높고 해외 자금 유출입이 자유로운 소국 개방경제 특성상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몸살을 앓는다’고 할 만큼 상대적인 시장 변동성도 크기 때문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과 금리가 요동치는 것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예상보다 빠른 긴축 행보 전망과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 우려,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겹친 결과다. Fed가 다음달 기준금리 0.25~0.50%포인트 인상을 시작으로 본격 유동성 죄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길성/장강호/이광식/이인혁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