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첫 TV 토론회에서 ‘EU 택소노미’가 화제에 올랐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 활동을 판별하는 유럽연합(EU)의 분류 체계를 의미한다. EU 택소노미가 특히 주목을 받는 이유는, 원자력을 배제한 우리나라의 K-택소노미와 달리,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처리 계획 등을 전제로 해 원전을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 수단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서 원자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분명한 장점이 있는 반면, 방사능 폐기물 처리, 중대사고 시 방사능 누출 등을 둘러싼 불안감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측면에서 우월한 에너지는 없다. 석탄은 환경적 측면에서, 석유와 가스는 경제적·안보적 측면에서 열위에 있으며 재생에너지는 경제성이 여전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간헐성 등의 문제로 기술적으로도 마뜩지 않다. 월등한 에너지의 부재는 선택을 강요한다. 선택은 기준을 정하는 문제다. 기준이 달라지면 선택 또한 달라지기 때문이다.
EU 택소노미는 에너지 선택의 국제 기준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EU 택소노미가 설정한 6개의 환경목표 중 두 개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에너지 선택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처해 있는 어떤 위험 요인보다 기후변화를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위험으로 여긴 결과로 보인다.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에너지의 확대에 있다. 현재 우리 인류가 기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무탄소에너지는 원자력과 태양광·풍력·수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이외에는 없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한 간헐성으로 말미암아 공급의 안정성을 크게 훼손한다. 더욱이 간헐성을 완벽하게 보완할 기술 개발은 여전히 요원해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에너지믹스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원자력이 불가피한 이유다.
재생에너지도 원자력도 무탄소 전원이라는 차원에서 차등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국제에너지기구도 2019년 5월 보고서를 통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필요한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은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며 원전의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을 둘러싼 위험이 기후변화 위험보다 훨씬 위중하고 시급하다면 신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문제는 원전 관련 위험이 지나치게 과장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첫째, 중대 사고의 위험성이다. 전 세계 원전의 중대 사고에 의한 사망자는 체르노빌 사고의 47명이 유일하다는 것이 공식 통계다. 우리나라에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2020년 산재 사망자 수가 882명인 점을 감안하면, 원전의 위험성은 과장됐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사용후 핵연료 처분 이슈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1호기를 시작으로 40년 이상에 걸쳐 원전을 사용해 왔다. 그 결과 약 50만 다발의 폐연료봉을 이미 배출했고 현재 임시저장 중이다.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는 향후 탈원전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불가역적인 과제다. 사용후 핵폐기물 관련 핵심 이슈는 폐기장 설치에 있지 규모가 아니다.
우리는 기후변화의 위험과 일정 수준까지 통제 가능한 원자력 사고 위험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하고 치명적인 위험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 앞에 놓여 있다. EU 택소노미 결정으로 기후변화가 시급한 과제라는 데 전 세계가 동의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기후변화 위기 앞에서 제거해야 할 것은 이산화탄소이지 원전이 아니다. 재생에너지도 원전도 이산화탄소 감소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RE100’보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무탄소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CF100’이 기후변화 방지라는 목적에 훨씬 더 부합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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