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온라인 배송기사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이 상급법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온라인 배송기사들도 택배기사들과 비슷한 지위를 확보해 노조를 결성하고 쟁의행위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14일 법조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14부(재판장 이상훈)는 홈플러스와 업무위탁계약을 맺은 서진물류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달 27일 원고 패소 판결하고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온라인 배송기사 A씨는 2019년 5월부터 서진물류와 배송계약을 체결하고 홈플러스 안산점의 온라인 주문 상품을 배송해왔다. 온라인 배송기사는 지입차량을 이용해 물류회사와 계약을 맺고 특정 회사의 상품을 배송하는 기사를 말한다. 특정 온라인몰 상품이 아니라 다양한 물품을 배송하는 택배기사와 구분된다.
A씨는 2019년 1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마트산업노조(마트노조)에 가입한 뒤 온라인배송지회장으로 활동해왔다. 마트노조는 2020년 3월 수임료 인상을 요구하기 위해 배송기사들의 업무현장 촬영을 기획했다.
이때 고객의 모습까지 동의 없이 촬영했다는 이유로 안산 지역 맘카페에 민원글이 올라왔다. 홈플러스로부터 항의를 받은 서진물류는 2020년 3월 A씨에게 무단촬영, 내부 업무절차 외부인 공유 등을 이유로 운송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A씨와 마트노조는 노동위원회에 “계약 해지가 노조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취급 등을 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계약 해지가 무효”라고 판단하자 서진물류가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핵심 쟁점은 A씨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있느냐였다.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하려면 ‘노조법상 근로자’의 정당한 조합활동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법상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구분되는 개념으로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와 관련돼 있다.
서진물류는 “촬영 및 차량 동승은 노조활동이 아니고 사전 동의 없는 근무시간 중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서진물류와 지휘·감독 관계를 맺고 노무 제공의 대가로 임금이나 급료를 받는 노조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온라인 배송기사는 최소 근속기간이 3년이고 2년씩 운송계약이 연장되는 등 지속적인 법률관계에 있다”며 “휴대폰에 설치한 홈플러스 배송업무 시스템을 통해 업무 내용을 상시 보고하는 등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운송계약 해지도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서진물류에 중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보기 어렵고 고객 민원 발생은 A씨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이라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선 “지입차주들로 구성된 온라인 배송기사들에게 노조법상 지위를 부여해준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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