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의약품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시험을 중국에서만 진행했다면 시판 승인이 어렵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중국에서 개발되고 있는 수십개 신약의 미국 진출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평가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FDA 외부 자문위원회는 일라이릴리와 이노벤트바이오로직스가 함께 개발한 폐암 치료신약 '티비트'가 FDA 허가를 받기 위해선 추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이날 자문위 투표에 참여한 15명 중 14명이 당장 허가하기엔 임상 결과가 부족하다는 데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리차드 파듀 FDA 종양센터 국장은 "단일 국가의 임상시험 데이터를 제출한 것은 인종적 다양성 면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인종의 임상 데이터를 제출해 약효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FDA는 다음달 말께 티비트 허가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FDA가 자문위 권고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자문위와 같은 판단을 내린다. 티비트는 물론 중국에서 임상 시험을 하고 있는 다른 의약품의 미국 진출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일라이 릴리는 중국 바이오기업인 이노벤트와 함께 티비트를 개발했다. 이 후보물질은 중국에서 진행한 임상시험을 통해 무진행생존기간(PFS) 등 신약 허가를 위한 주요 목표치를 달성했다. 이날 자문위 회의에 참여한 위원들도 이 치료제가 암 진행이나 사망을 늦추는 데 효과 있다는 점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들은 중국에서 시행한 임상시험의 정확성을 문제 삼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일부 중국 임상기관에서 환자 부작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티비트가 환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신속히 허가해야 하는 치료제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MSD의 키트루다, BMS의 옵디보 등 이미 허가 받은 비슷한 계열의 치료제가 있어서다.
FDA는 이번 자문위 결정이 다른 의약품 허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에서 개발을 진행 중인 치료제 후보물질 중 FDA 허가를 앞둔 제품은 25개에 이른다.
FDA의 신약 허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에서 임상시험을 주로 진행했던 베이진의 림프종 치료제 브루킨사가 2019년 FDA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파듀 국장은 품질 데이터가 있다면 중국에서 진행한 임상시험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신약 승인을 위한 대규모 후기 임상시험을 진행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그동안 미국 제약회사들이 중국 환자를 대상으로 한 후기 임상시험을 확대한 이유다.
릴리와 노바티스 등은 값싼 중국 의약품을 미국에 들여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 바이오기업들도 약값이 저렴한 자국보다 해외 진출을 선호했다. 이런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파듀 국장은 "비인두암처럼 미국보다 아시아에 많은 질환이라면 중국 단일 임상 데이터를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개발하는 의약품의 적응증이나 국가별 질환 특성 등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래드 론카 론카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밖에서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면 값싼 중국산 면역관문억제제(PD1 계열)는 미국에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FDA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선 신약 개발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