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아니 누가 돼야 하는가.” 요즘 사람들 사이의 가장 뜨거운 화두(話頭)다.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껏 확실하게 치고나가는 후보가 없다. 이렇게 박빙승부가 펼쳐진 선거는 없었다.
이번 선거는 이 밖에도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 주요 후보들에 대한 ‘비(非)호감’ 논란이 거세다. 후보 본인은 물론 부인 등 가족들의 지난 행적을 놓고 ‘검증’ 공방이 뜨겁다. 둘째, 노골적인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한다. 주요 후보들이 세대별·직군별·지역별로 이것저것 “해주겠다” “퍼주겠다”는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엊그제 국회에서 여야가 새해 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정부가 제출한 것보다 40조원이나 늘려 편성하기로 의기투합한 것은 그 절정이다.
셋째, 과거 대선과 달리 주요 후보들의 큰 그림, 유권자 눈을 사로잡을 대표 공약이 뚜렷하지 않다. 후보들 스스로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심쿵’(심장에 쿵 하고 충격을 주는 감동, 국민의힘 윤석열)을 공약 브랜드로 내걸었다. 넷째, 주요 후보 간 ‘우클릭’과 ‘좌클릭’을 통해 이념적 구분이 흐려졌다. 이재명 후보가 기업인들을 만나 “불필요한 규제를 다 없애겠다”며 ‘친기업’을 자임하고, 윤석열 후보는 경제계가 반대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지지한 게 그 사례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다 거기에서 거기 아니냐”며 고개 젓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약에 큰 차이가 없으니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라도 잘 따져봐야 한다”는 ‘인물론’도 부쩍 고개를 들고 있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로 근무하며 행정 경험을 잘 쌓았다”고 하고, 윤 후보 지지자들은 “검찰 근무를 통해 공정과 상식, 원칙을 되돌려놓을 적임자임을 입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제대로 짚어야 할 게 있다. 대통령선거는 국가를 이끌 최고·최종 책임자를 뽑는 일이지, 후보자들에 대한 호감 여부나 과거 경력을 따지는 ‘미인선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지 후보의 개인적 매력까지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된다. 개별 공약으로 후보를 판단하는 것도 곤란하다.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당장의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득표용 공약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게 후보들의 현실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각 후보가 지향하는 국정 원칙과 방향, 정치적 가치가 무엇인지다.
원칙·방향·가치라는 큰 틀을 직시해야 후보들이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늘어놓는 얘기에 속지 않는다. 단적인 예가 이 후보의 노동정책 관련 공약이다. 그는 한 기업인과의 유튜브 토론에서 “고용유연성을 확대하겠다”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는 며칠 뒤 발표한 노동공약에선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의 정규직 고용 법제화’를 선언했다. 기업의 채용형태에까지 정부가 일일이 개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반면, 정규직 고용유연화와 근무형태 다양화 등 유튜브 토론에서 약속했던 ‘고용유연성 확대’ 조치는 한 구절도 내놓지 않았다.
말의 앞뒤가 다르다는 것을 지적했을 뿐, ‘노동자를 위해 기업에 대한 국가 통제를 더 늘려야 하고, 그렇게 할 것’이라는 그의 원칙과 방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짚고자 하는 건 그가 ‘노조 표를 지키면서 기업인 표도 끌어들이기 위해’ 지키지 않을 공허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동정책만이 아니다. 이 후보는 일자리정책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공공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윤 후보는 반대다. 엊그제 공개 연설을 통해 “역동적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과 시장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며 ‘민간 주도 성장’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일부 공약이 겹치기는 하지만 두 후보의 국정원칙과 추구하는 가치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은 명확하다.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두 후보가 왜 각각의 가치를 지향하는지, 보다 선명하게 입장을 밝히고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선진 한국의 국격에 맞는 정치다. 유권자들도 각성해야 한다. 개별 공약에 치이거나 막연한 인물론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