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비자물가 수준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정부·중앙은행이 쏟아낸 유동성과 원자재·제품 공급망이 훼손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급등)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9일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거시경제 환경의 구조적 변화 생산, 고용, 물가의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장 교수 등은 이 보고서를 오는 10~11일 한국경제학회 주관으로 열리는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장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으로 우상향하는 필립스곡선을 제시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가 1958년 제시한 ‘필립스 곡선'은 실업률이 낮아지면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필립스곡선이 우상향한다는 것은 이 같은 상관관계가 깨지고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는 "2000년부터 필립스곡선이 평탄화되거나 우상향하는 흐름이 포착됐다"며 "한국과 미국에서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보통신(IT) 기술발전으로 고용없는 경기회복 양상이 이어지는 것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코로나19로 국제유가가 치솟는 등 공급 측 충격이 이어지는 데다 기대인플레이션 수준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며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이 귀환한 만큼 스태그플레이션 본격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원자재 가격 등 공급충격으로 촉발된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거나 생산량을 줄이고 제품가격도 높인다.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임금상승→고용감소·제품값 상승→기대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국의 소비자물가 수준이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 수준으로 미국 등보다 낮아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며 "한국 소비자물가는 집값 등 주거비가 반영이 되어 있지 않은데, 이를 반영한 체감물가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매파(통화긴축 선호)' 정책이 적절하다고 봤다. 장 교수는 "1970년대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미국을 덮쳤을 때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다"며 "당시에 볼커가 외려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라고 공격을 당했지만 그 덕분에 인플레이션이 30년 동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폴 볼커 사례처럼 한은도 물가를 걱정하며 속도감 있게 금리인상에 나서야 하고, 현재 그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삽입하는 데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한은의 정책수단은 기준금리 뿐"이라며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등 기존 정책목표도 벅찬 상황에서 고용안정까지 얹으면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탄화된 필립스곡선 등을 볼 때 기준금리 인하가 고용창출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추가경정예산(추경) 등 재정정책에 대한 우려는 상당했다. 그는 "가장 걱정되는 부문이 재정정책"이라며 "재정의 화폐화 양상도 나타나는 등 재정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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