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으며 노조활동을 하는 유급노조전임자 수를 얼마나 둘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대화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유급노조전임자를 늘리자"는 노동계의 요구로 시작된 논의지만 현행 한도로도 부족하지 않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경영계에서 되레 축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3월 대통령선거의 향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협상의 키를 쥔 공익위원들이 노사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직속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는 지난 3일 17차 전원회의를 열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한도 조정을 시도했으나 노사 입장차만 확인하고 종료했다. 이 날은 개정 노조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심의 의결시한이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이 중재안도 내지 않는 등 의결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의결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다음 회의는 9일 속개할 예정이다.
2010년 도입된 타임오프제도는 노조 전임자의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임금도 지급하는 제도로 조합원 규모에 따라 한도가 정해져있다. 2013년 정해진 현행 기준은 조합원 수에 따라 연간 2000(99명이하 사업장)~3만6000시간(1만5000명 이상 사업장)까지 허용하고 있다. 연간 2000시간은 주40시간 풀타임 근로자 1명에 해당한다.
노동계는 현행 10개 구간을 조정해 소규모 사업장의 유급 노조전임자 한도를 늘리고 상급단체에서 활동하는 인원에 대해 추가한도를 부여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중소 사업장에서의 노조 활동이 산업안전, 산재 예방 등 노사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반면 경영계는 10개 구간은 그대로 두되 대형 사업장의 노조 전임자 수는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27일 경사노위를 찾아 "타임오프는 예전에 노조가 약했을 때 노조를 도와주자는 취지였는데 지금은 노조가 세계 최강"이라며 "경영계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고 실태조사 결과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손 회장이 언급한 실태조사 결과는 급물살을 타던 타임오프 논의의 물길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실상 타임오프 한도 확대를 전제로 근면위가 꾸려졌지만 이후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근면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단체협약으로 정한 타임오프 한도의 약 21~24%만 노조활동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한도로도 충분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경영계가 주장하고 나선 배경이다.
노동계의 '선공'으로 시작했지만 실태조사를 계기로 경영계가 '역공'에 나서면서 논의는 헛바퀴를 돌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위원회처럼 의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이 모종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경사노위 안팎의 분위기는 다르다.
근면위는 지난해 7월 시행한 개정 노조법에 따라 같은 달 경사노위에 설치됐다. 관련 법에 따라 경사노위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30일 심의를 요청했고 '심의요청 60일내 의결'이라는 조항에 따라 지난 3일이 의결 시한이었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최저임금 심의 요청을 받으면 최저임금위원회는 90일내 의결을 해야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다. 시한을 넘기더라도 별도의 강제규정이 없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근면위는 타임오프 한도 조정의 영향이 최저임금에 비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공익위원들이 총대를 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경사노위 안팎의 전망이다. 경사노위 사정에 밝은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최저임금은 그 영향이 전국민에 미치고 이듬해 예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공익위원들이 어떻게든 결론을 내는 것이지만 타임오프는 다르다"며 "특히나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공익위원들이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