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집착한다는 뜻이다. 씻지 않아서 냄새가 나는데 어떤 향수를 써야 냄새가 안 날까만 생각하는 식이다. 문제는 우화(寓話)에나 나올 것 같은 이런 어리석은 일들이 정부 정책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간 이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주택 공급을 늘리는 대신 집을 사지 말라고 억눌렀다. 원자력을 안전하게 사용할 방안을 강구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탈원전에 나섰다. 비정규직이 문제가 되자 임금 격차 등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만 했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전·현직 교수와 언론인 공무원 학자 등 13명이 함께 쓴 《대한민국 판이 바뀐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강조한다. 탈원전, 부동산, 기업 규제, 사법 개혁, 대북 정책, 복지 제도, 노동 시장, 국가 부채, 교육, 한·일 관계 등에 걸쳐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의 관점과 해법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내용이 상식적이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논의하는 데 출발점이 될 만한 책이다.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현상에만 집중했다. 왜 사람들이 빚을 내서라도 좋은 동네에 있는 아파트를 사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 자녀를 좋은 학교와 학원에 보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 당장은 임대주택에 살더라고 언젠가 자가를 보유하고 싶은 청춘 세대의 열망을 외면했다.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우선 주택 공급이다. 신축뿐 아니라 적절한 인센티브를 통해 기존 주택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임대 시장에서도 민간의 참여를 죄악시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리도 햇볕정책의 따사로운 유인책을 이야기하는 정부가 무슨 이유로 자국의 국민을 다만 집 한 채 가졌다는 죄로 따사로운 유인책이 아니라 세금으로 징벌하려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문 정부는 복지 지출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빈곤층이 느끼는 효과는 크지 않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설계되지 못한 탓에 복지 사각지대는 줄지 않았고, 중복 급여와 도덕적 해이는 만연해졌다. 예컨대 2020년 실업급여 수급자는 전년도 119만 명에서 137만 명으로 늘었는데, 이 중 두 번 이상 받은 사람이 29만 명에서 35만 명으로 증가했다.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 취업지원서만 내면 반복적인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선 어려운 살림으로 인해 고독사나 자살자가 늘었다. ‘빈곤을 방치하는 복지 시스템’이라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책은 ‘현금 살포’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이 복지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오히려 보편적 기본 서비스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의료와 교육은 물론이고 돌봄, 주거, 음식, 교통, 정보, 법률 등에서도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혁신 성장이다. 지난 5년간 정부 정책과 담론에서 ‘미래’는 뒷전이었다. 과거사니, 적폐니 하며 정쟁(政爭)만 일삼았다. 소득주도 성장으로 가진 것을 나누는 데 골몰했고, 거위의 배를 가르려 했다. 저자들은 이제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과 산업은 물론, 정부와 정책을 포함한 전 부문에서 혁신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판을 바꾸는 일은 고깃집 불판을 바꾸는 것과 같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 파괴이며, 창조적 파괴는 진영 논리와 포퓰리즘이 가져온 극단을 파괴하는 데서 출발한다. 상황의 맥락을 파악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실사구시 정신에 기초해 비정상적인 정책들을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