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7일 광주를 찾아 “광주 군공항을 이전하고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의 호남 방문은 경기 지역 순회 일정을 서둘러 끝내면서까지 긴급하게 이뤄졌다. 이 후보가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60%대 지지율에 그치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대 선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설 연휴 전 ‘텃밭 다지기’가 시급하다는 내부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호남에서 민원 해결 공약 보따리 풀어
이 후보는 이날 광주 신촌동 광주공항을 찾아 광주·호남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저의 정신적 스승이자 사회적 어머니”라며 “앞으로도 죽비이자 회초리로서 민주당을 바로잡아주실 광주에 완전히 혁신적인 새 희망을 만들어드리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이 후보는 지역 현안 해결을 약속하는 ‘민원 패키지’ 공약들을 발표했다. 광주 군공항 이전이 대표적이다. 이 후보는 “부산 가덕도신공항 지원에 발맞춰 광주 군공항을 적극 지원하고 그 부지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실증하는 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을 지원하겠다”며 “광주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 AI(인공지능) 융복합 클러스터에 인공지능연구원을 설립하고, AI 연구개발 인프라 조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하겠다고도 했다. 이 후보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로 자리매김시키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광주·전남에 수도권 수준의 초광역 교통망을 조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보는 이날 “박정희 정권이 자기 통치 구도를 안전하게 만든다고 경상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전라도는 일부 소외시켜서 싸움시킨 결과란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며 ‘호남 소외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무책임한 지역 갈등 조장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광주 붕괴사고 피해자 가족과 면담
이 후보는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을 찾아 실종자-피해자 가족들과 현장을 둘러보고 면담했다. 이날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 “이런 중대재해 사고를 반복해 일으키는 기업은 건설 면허를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앞으로라도 경영주를 엄중하게 처벌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화정아이파크 사업의 원청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이 후보는 광주 말바우시장에서도 시민들을 만나 민심을 청취했다. 충장로2가 충장로우체국 유세에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동참했다. 이 전 대표는 경기 성남과 의정부에 이어 이번주에만 세 번째 이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與, 송영길 문전박대에 ‘화들짝’
이날 광주 방문은 민주당 대선 승리 공식의 필요조건인 호남의 절대적 지지가 위태롭다는 내부 분석에서 기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후보는 이날까지 경기 지역 유세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주춤한 사이 윤 후보의 지지율이 20%대까지 올라오자 일정 변경을 결정했다는 설명이다.민주당 내에서는 지난 26일 송영길 대표가 화정아이파크 현장 방문에서 ‘문전박대’당한 것이 호남 민심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당시 송 대표는 지역 상인과 피해자 가족들의 거부에 가족 면담은 물론 사고 현장 방문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송 대표 등을 향해 “표 찍을 때만 텃밭이고, 호남에 호소한다”며 “어떻게 국민의힘보다 늦게 오냐”고 항의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앞서 25일 현장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면담하고 붕괴 사고 발생 장소인 29층까지 동행한 것과 대비된다.
아직 호남 지역 내 ‘정권 교체’를 언급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있다. 한 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은 “박근혜 후보도 18대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지율은 20%를 웃돌았지만 실제 10% 득표하는 데 그쳤다”며 “투표 당일에 진보 진영의 유력 후보를 확실하게 밀어주는 호남 특유의 ‘전략 투표’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도 공약 발표 후 기자들을 만나 “평소 여론조사 지지율과 득표율은 전혀 다른 것”이라며 “다른 민주당 후보들도 선거 전에는 60%대 지지율이었다가 최종 득표율은 80~90%였다”고 자신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