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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에게 공정은 '철학 아닌 실용'…기업들 소통으로 답하라 [신재용의 MZ세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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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경제계를 강타한 성과급 논란의 도화선이 된 SK하이닉스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SK하이닉스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은 작년 1월 28일 발표된 연봉 20% 수준의 성과급 지급에 직원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급기야 한 4년차 직원이 2만9000명에 이르는 전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공개적으로 성과급 지급 규모와 불투명한 보상 기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촉발됐다. 단 2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그룹 오너인 최태원 회장의 연봉 반납 선언과 이석희 사장의 해명문 및 개선 방안 발표, 노조와의 전격적인 합의를 통해 영업이익의 10%를 기반으로 한 성과급 산정 방식 변경으로 논란은 일단락됐다.


비단 하이닉스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네이버, 카카오, 현대중공업 등 상대적으로 고임금 대기업의 화이트칼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성과급 등 보상 결정에 있어 본격적으로 불만을 나타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쉬쉬하면서 비공식적으로 공유되던 기업의 성과급 문제는 이제 언론은 물론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 직장인 익명 플랫폼을 통해, 특히 MZ세대의 사무연구직 직원들 사이에 활발히 공유되며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원래 연봉과 성과급은 회사 내 다른 직원과도 나누지 않는 비밀스러운 사람의 속살 같은 것 아니던가? 여러 사례를 종합하면 화이트칼라 MZ세대는 1)투명성과 공정성을 중시하며 2)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하고 3)블라인드, 잡플래닛과 같은 익명의 직장인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뭉쳐서 집단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Z세대는 왜 공정한 보상에 더 민감할까?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국내 시가총액 2위 기업의 4년차 젊은 직원으로 하여금 2만9000명의 전 임직원을 상대로 성과급 규모에 대해 불만을 가득 담은 메일을 ‘쏘게’ 한 그 분노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다른 국내 대기업에서 젊은 직원이 오너 사장에게 보낸 임금체계 개편안 동의과정의 절차적 문제를 조목조목 비판한 글도 블라인드에서 회자됐다. 기성세대는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나 불투명하게 평가받고 불공정하게 보상받는 것을 싫어하지만 MZ세대에게는 기성세대에 비해 공정이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중요하고, ‘이 정도면 우리 회사는 공정해’라고 느끼는 기성세대에 비해 MZ세대는 조직이 참을 수 없이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불공정한 성과보상이다. 필자가 최근 출간한 MZ세대와 공정, 그리고 보상 이슈를 분석한 책 《공정한 보상》은 바로 586과 X세대 선배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젊은 직원들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의 산물이다.

MZ세대가 구성원의 절반에 육박하면서 국내 기업들은 MZ세대와 일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열심이다. 조직 내 세대 갈등은 점점 커지고 있고 MZ세대를 담아낼 수 있는 조직 문화의 정립은 대부분 기업에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상과제가 됐다.

세대 전쟁으로 요약되는 조직 내 세대 갈등으로 기존의 조직 문화에 균열과 갈등이 생긴 한국 기업, 특히 기업 임원과 관리자급의 기존 세대는 당혹해하며 이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열공’하고 있다. MZ세대는 약 170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34%가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제 이들은 국내 주요 기업 임직원의 50% 수준으로 추산되며 일부 대기업에서는 무려 75%에 이른다. 이러한 현실에서 기업이 MZ세대를 조직에 조화롭게 융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공정과 MZ세대라는 두 키워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화답해야 한다.

유례없는 저성장 시대, 노동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 다락같이 오르는 부동산 가격 속에서 MZ세대는 불안하고 미래에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커져가는 불안과 불확실성, 미래에 대한 비관 속에서 MZ세대에게는 ‘예측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됐다. 이들은 노력 대비 보상을 좀 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험 기반 능력주의를 선호하고, 부당한 부모 찬스를 혐오하며, 현 정부의 사회 통합을 위한 약자에 대한 배려 정책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이런 MZ세대가 원하는 공정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MZ세대의 공정은 철학적인 차원이라기보다는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매우 실용적인 차원에 가깝다. MZ세대는 ‘교환’이라는 틀로 세상을 본다. 공정함을 간절히 원하는 속내에는 ‘나는 당신들 세대 누구보다도 많이 노력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결국 MZ세대에게 직장에서의 보상이란 본인이 제공한 노동(시간, 노력, 기회비용)에 상응하는 대가이며, 그들은 이 교환관계를 공정하게 가져가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존 애덤스의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 즉 조직 구성원은 그들이 기여한 것과 그들이 받은 보상의 비율을 판단하고 이를 조직 내 다른 구성원의 것과 비교함으로써 보상의 공정성 정도를 가늠한다는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필자는 MZ세대의 평가와 보상에서의 공정에 대한 요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 과정 단계마다 겪어온 일련의 혹독한 평가 과정과 격심한 토너먼트 경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시험 한 방’으로 대학에 입학한 기성세대에 비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경쟁과 지속적이며 강도 높은 평가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MZ세대는 공정성의 중요성을 이른 나이에 느꼈을 것이다. 대학 입학시험 훨씬 이전부터 이들은 ‘일상이 평가’가 된 교내에서 그리고 교외에서 학업, 봉사활동, 경시대회 등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불철주야 달려왔기 때문이다. 격심한 토너먼트 경쟁을 경험한 MZ세대는 자신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올바르게 평가받기 위해 본능적으로 ‘시스템의 공정성’을 중요시 여기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지속적이고 치열한 경쟁이 공정성에 대한 본능적 민감함을 길러줬다면, 정보통신기술 발달은 이들의 공정성 인식을 더욱 용이하게 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MZ세대는 취업 사이트와 직장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대해 회사가 다른 회사에 비해 공정한 평가와 대우를 해주고 있는지 스마트폰만 몇 번 누르다 보면 알리고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집단으로 연대해서 참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관리자가 변해야 한다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참는’ MZ세대 직원들이 진정한 능력주의라는 철학적 기반에서 ‘투입물과 산출물의 공정한 교환’이라는 틀로 보상을 바라본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벤치마킹하면서 오랫동안 신봉해 온 내부 승진과 연공서열 기반의 보상제도는 대폭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MZ세대의 욕구를 보상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직무와 역량에 기반해 설정한 기본급 및 능력급에 과감하게 성과에 기반한 보상을 더하는 것이다. MZ세대가 요구하는 보상체계는 외부노동시장을 이용한 핵심 인재 영입을 중시하며 단기고용, 철저한 능력과 성과평가에 기초한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연봉제를 근간으로 한 미국 기업의 인사 철학에 훨씬 더 가깝다. 작년 말 공개된 삼성전자와 CJ그룹 등의 인사제도 개편 방향도 이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연공서열에서 벗어나 직급을 통합하고 젊고 유능한 경영자를 조기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며 성과에 따른 보상을 강화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기업의 MZ세대 직원은 학점에 목숨을 걸고 대학을 다니다가 입사 후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지고 이직이 보편화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회사생활에서 또 다른 중요한 인센티브인 조직 내 승진에도 큰 관심이 없다. 따라서 MZ세대 직원들이 단기 평가와 이에 따른 보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요즘 대학생들이 팀 프로젝트로 평가받는 것보다 개인의 성과인 시험에 의한 평가를 선호하듯 MZ세대 직원들은 회사에서 개인의 기여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 기업에서 개인 성과가 연봉급에 반영되는 정도는 미미하고 대부분 성과급은 조직이나 전사성과급에 근거해 획일적으로 결정돼 지급되고 있다. 2021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에게 조만간 OPI, 즉 집단성과급을 지급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임직원 총 6만 명 모두 동일하게 연봉의 44~48%를 성과급으로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직 혹은 전사성과가 탁월해 연봉 대비 집단성과급 비율이 높더라도 MZ세대 직원들은 개인의 공헌에 대한 고려 없이 조직이나 회사의 모든 직원이 일률적으로 같은 지급률을 적용받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삼성전자의 경우 부장(CL4)급 직원은 조직성과급으로 결정된 성과급 비율에 개인고과를 적용해 개인고과가 우수한 사람은 연봉 대비 최대 70%까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지만 CL3까지의 직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성과급에 대한 구성원의 불만을 최소화하고 성과급의 순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조직·전사성과급 위주의 획일적인 보상에서 탈피해 개인의 성과 측정과 보상 간 연계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개인성과급 비중이 상당히 높은 삼성그룹조차 고성과 부문의 저성과자가 저성과 부문의 고성과자보다 총연봉이 커지는데,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손대지 않고서는 매년 초 계속되는 대기업 성과급 논란은 연례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구글, 애플 등 미국 실리콘밸리 혁신기업은 조직이나 회사 성과보다는 직원 개인의 성과, 역량, 조직 목표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고 이를 직원 보상에 반영한다. 결과보다는 과정, 집단보다는 개인, 단기보다는 장기, 정량보다는 정성, 상대보다는 절대평가를 사용하는 실리콘밸리의 보상제도가 원활히 작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 목표 수립 및 실행, 성과 창출의 모든 단계에서 직원의 주요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개인 성과와 역량을 평가하며 이에 근거해 승격과 보상에 반영하고 직원에게 수시 피드백, 코칭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잘 훈련된 관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료평가, 관리자에 대한 상향평가 역시 같이 실시한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하다.
평생 직장 따위는 없다. 최고가 돼 떠나라!
MZ세대에게는 수직적 혹은 수평적 보상 격차로 표현되는 보상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보상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즉 보상을 결정하는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한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MZ세대는 시스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납득시키고 불편한 얘기라도 진정성 있고 투명하게 소통하면 설령 그들에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쿨하게 인정하고 이해하는 큰 장점이 있는 세대다. 복리후생 교육훈련 등 비금전적인 보상, 도전적인 역할과 기회의 부여도 보상만큼 중요하다. 요즘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의 역량과 몸값을 높여줄 수 있다면 단기 보상에만 올인하지 않는다. 당장 뭔가를 크게 바꾸기 어렵다면 직원들에게 보다 많은 권한과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역량 제고를 위한 투자에 먼저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직원의 역량을 높이고 잠재력을 극대화해 노동시장에서 직원의 가치를 올리고 나아가 MZ세대가 원하는 계층 상승 토너먼트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최고가 돼 떠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 성과급 사태의 시작과 마무리는 다른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무랄 데 없이 논리적이지만 건조했던 이석희 사장의 2월 2일 최초 해명문은 사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논란은 최초 담화가 나온 지 불과 2일 만에 이 사장이 두 번째 담화를 발표하고서야 잦아들었다. 최초 해명문과는 달리 두 번째 메시지에서 이 사장은 진정성 있게 ‘공정’과 ‘소통’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2021년에는 영업이익 기준의 성과급 지급 기준을 고민하겠다’와 ‘구성원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하이닉스는 매출 43조원, 영업이익 13조원의 탁월한 실적을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곧 발표될 전사성과급 발표에서 과연 영업이익의 10%인 1조3000억원을 임직원에게 성과급으로 풀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구성원들의 불만을 미리 줄이기 위해서 작년 말 이미 기본급의 300%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했다. 1년 전 성과급 산정 근거를 투명하고 설득력 있게 구성원들과 공유하지 못해 본의 아니게 세대 전쟁의 최전선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하이닉스 경영진의 올해 선택이 궁금해진다.

■ 신재용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미국회계학회(AAA)에서 발간하는 관리회계분과 학술지 ‘Journal of Management Accounting Research’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기업의 성과평가와 보상, 지배구조를 주제로 세계적인 경영학 저널에 다수 논문을 발표했으며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회계학회-삼일회계법인 연구분야 저명교수를 역임했다. 지난해 12월 초 MZ세대와 보상공정성에 대한 저서 《공정한 보상: 왜 MZ세대는 보상에 분개하는가?》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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