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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허용하는 해운법, 담합 금지하는 공정거래법…공정위 해운업 재재 논란 [정의진의 경제야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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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체 사이의 운임 공동행위(담합)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을 근거로 제재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를 두고 정부 안팎에서 논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업 사이의 담합을 기본적으로 금지하는 반면, 해운법은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소수 거대 선사가 해운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해운업체의 운임 담합을 일부 허용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법이 지향하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는 가운데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해운업계와 공정위 사이의 갈등이 지난 18일 크게 확대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공정위가 국내외 23개 해운업체를 향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동남아시아 노선 해상운임을 두고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총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입니다. 공정위가 해운업계의 운임 담합에 제동을 건 것은 1980년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이었기에 공정위가 실제로 과징금을 부과할 것인지를 두고 해운업계의 관심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공정위도 해운법이 해운업계의 운임 담합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해운업계가 해운법의 담합 허용요건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을 근거로 제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해운법 제29조는 선사들이 운임 담합을 하기 전에 해상 운송 서비스의 수요자인 화주단체(貨主團體)와 충분히 정보를 교환하고 협의를 해야 하며, 담합 내용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신고해야 한다는 요건을 두고 있습니다. 담합은 허용해주되, 시장질서를 교란할 정도의 무분별한 담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해운업체들이 이 요건들을 15년 동안 전혀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담합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할 수 있다는 게 공정위의 논리입니다.

공정위의 제재 결정에 해운업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하겠죠. 특이한 점은 같은 정부 부처인 해수부도 공정위의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운법은 해수부 소관 법률인데, 선사들이 해운법에서 정한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해운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담합 금지조항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두고 해수부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해수부는 또 해운업 진흥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부처인 만큼 공정위의 제재 결정이 달가울 리 없습니다.

게다가 해수부는 공정위의 판단과 달리 해운업체들이 해운법에서 규정한 담합 요건을 넓은 범위에서 위반한 게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작년 7월 내린 바 있습니다. 해운업체들이 120여 건의 세부 담합에 대해선 해수부 장관에 신고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19건의 주된 담합은 신고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는 게 해운법을 관할하는 해수부의 입장입니다. 해수부는 '해운법 요건 위반한 게 아니야'라고 하는데, 공정위는 '그렇지 않아. 해운법 요건 어긴 거니까 원칙대로 할게'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8일 브리핑을 열고 "해운업의 특수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 반(反)경쟁적 행위에 대해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만 한다"면서 "(공정위의 이번 제재 조치로) 해수부가 운임 담합에 대해 관리·감독을 보다 철저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해운업체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해수부가 괜찮다는데 공정위가 왜 나서냐는 겁니다. 특히 해운업체 측은 해운법의 담합 요건을 지키지 않을 경우 공정거래법으로 제재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해운법엔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공정위의 제재 조치가 과도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해운업계와 공정위 사이의 갈등은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의 관계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담합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은 제58조(개정 공정거래법 제116조)를 통해 '다른 법령에 따라 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적용제외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예외를 인정해주도록 법에 명시돼있는데, 해운업체들은 해운법 제29조에서 정한 절차상·내용상 요건을 지키지 않았으니 예외를 적용하지 않고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해야만 한다는 게 공정위 논리입니다.

반론도 존재합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체가 모두 법학자(法學者)도 아닌데, 공정거래법과 해운법 사이의 법률 적용 관계를 어떻게 모두 파악하고 있겠느냐"며 "절차적 문제가 있다면 해운법에서 정한 과태료를 부과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해운법에서 정한 과태료는 최대 1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재 효과가 없다는 게 공정위의 입장입니다.

일반 기업 입장에선 해운법 허용 조건을 위반했을 경우 공정거래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알기 어려웠다는 지적엔 공정위도 일부 수긍하고 있습니다. 이에 공정위는 해운법의 담합 요건을 지키지 않는 운임 공동행위에 대해선 공정거래법으로 제재받을 수 있다는 점을 해운법에 명시하는 방향으로 해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지난 18일 브리핑에서 "절차상·내용상 요건을 지킨 경우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는 한편, 요건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대해선 공정거래법을 적용하겠다는 문구를 해운법에 넣는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해수부와 협의가 됐다"고 밝혔습니다.

공정위가 해운업계의 지적을 일부 수용한 셈인데요, 이를 두고도 해운업계에선 볼멘 소리가 터져나옵니다. 해운사에서 선장으로 일했던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운법을 개정하기로 협의가 됐다는 말은 기존 법률에 미비한 점이 있었다고 공정위가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며 "미비한 법으로 과거에 일어난 공동행위를 제재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공정위는 또 다시 반론을 제기합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운법 개정 방향은 해운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의 관계를 보다 알기 쉽게 명확히 하는 것"이라며 "기존 법률 체계에서도 해운법 요건을 지키지 않은 운임 공동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법적 흠결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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