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무원이 누리는 혜택은 여러 부분에 걸쳐 다양하다. 국민연금과 비교되는 공무원연금만이 아니다.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공인노무사 등 국가공인 자격시험에서 돋보이는 ‘특별대우’도 그중 하나다. 정부가 관장하는 국가공인 세무사 자격시험에서 공무원 과잉 대우가 결국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다. 2021년 세무사시험 응시자 250여 명이 “세무 공무원 출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헌법소원을 내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2차 시험 4과목 가운데 2개를 면제해 주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다른 5개 자격시험에 비해 세무사 시험에서 공무원 우대가 과도했다는 일반 응시자들 주장에는 귀 기울일 만한 심각한 대목이 있다. 전문 자격사 시험에서 공무원 우대는 정당한가.
[찬성] 스페셜리스트 공무원 양성 위해 적절한 인센티브 제공해야
통상 공무원이 해당 분야에서 오래 일하게 되면서 거의 전문가 수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공무원들 업무 경력을 관련 분야에서 인정해 주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공무원의 전문성 배양에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직급 올라가는 것, 승진에 관심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특정 분야를 파고들면서 한 부문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기보다는 승진에 유리한 보직을 선호하고 이곳저곳 부서를 오가면서 진급 맞춤형 경력 쌓기에 주력하는 게 일반 관행이다. 그렇다 보니 한국 공무원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기업 등 민간의 발전 속도와 전문화에 비해 공직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이런 전문성 부족은 외국이나 국제기관과의 협의 등에서 국익 손실로 이어지기도 했다.어떻게든 전문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승진·승급에 유리한 자리만 찾아다니게 하면서 공무원을 ‘제너럴리스트’로 양산할 게 아니라 특정 분야를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가 많이 나오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선진 행정도 가능해진다. 전문가를 지향하는 바람에 승진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인센티브를 주는 게 현실적 대안이다. 그렇다고 당장 수당이나 급여를 많이 주는 것에도 문제는 따른다. 그래서 민간으로 이직할 경우 ‘우대’해 주는 것이다. 주된 이유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부패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공무원은 이런저런 ‘부정 거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 분야에서 오래 근무해 전문성을 쌓고 민간에서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현직에서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처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행 정착을 위해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공무원이 아니라 세무사 변리사 관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공인노무사 등 6개 자격에 혜택을 주는 것이다.
[반대] 일부 고난도 과목 시험 면제 혜택 상식선 넘어선 노골적 봐주기
‘상식’ 수준의 우대가 아니라 과도한 혜택, 노골적인 봐주기가 문제의 핵심이다. 세무사 시험 응시자가 이 제도에 대해 위헌소송을 낸 사연을 보면 기가 막힌다. 비공무원 일반 응시자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 따르면, 2차 시험 4개 과목 중 하나인 ‘세법학 1부’에서 ‘과락’(40점 미만) 탈락자가 82%에 달했다. 그런데 세무공무원 출신 응시자의 다수가 이 과목을 아예 면제받은 것이다.세무공무원 20년 이상 경력자나 10년 이상 근무자 중 5급 이상 경력이 5년이 넘으면 세법학 1·2부 과목을 면제해 주는 특혜 규정 때문이다. 일반 응시생 82%가 과락에 걸려 시험에서 원천 탈락한 과목을 세무공무원 출신은 자동으로 통과했다. 더 큰 문제는 4개 과목 평균 점수 순으로 당락이 결정되는데, 경력 세무공무원이 면제되는 과목이 유난히 어렵게 출제됐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공무원 출신은 면제되는 과목을 매우 어렵게 출제해서 과락으로 비공무원 응시자를 대거 탈락시킨 데 이어 평균 점수에서도 과목 면제자가 유리한 구조를 일부러 만든 것이다. 결국 이 과목 면제자는 평균 점수가 상대적으로 올라가니 과도한 혜택을 이중으로 줬다. 세무사 합격자 중 2차 과목 일부 면제자 비율이 2016~2020년 1.2~4.8%를 오르내렸으나 2021년에는 21.4%로 급등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가 관리하는 국가공인 시험이 이렇게 불공정 논란을 유발하는 게 정당한가. 오랜 준비로 세무사 시험을 치른 비공무원 응시자 3962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무사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공인 전문 자격사 시험에도 이런 특혜가 폭넓게 있는 게 과연 공정한가. 한 분야에 오래 매달렸다면 시험에서 전문 지식을 입증하면 된다. 한 분야에서 그렇게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혜택 아닌가. 과목 면제로도 모자라 시험 난이도 조작까지 했다면 과잉 우대를 넘어서는 범죄 행위다.
√ 생각하기 - 입시·자격시험, 최후의 공정 보루 … '불공정 논란' 왜 늘어나나
입시와 함께 국가공인 자격증은 공정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사회 최후의 보루다. 수능시험 한 문제 오류로 빚어진 소동만 돌아봐도 그렇다. 그런데도 세무사라는 중요한 자격시험에 위헌 시비까지 따르는 편파 특혜 논란이 있었다면 한국의 공무원은 도대체 어떤 자격증일까.‘상식’을 넘는 대우라면 세무사뿐 아니라 다른 공무원 우대 규정까지 모두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세무사 외 5개 시험에서 아직까지 불공정 논란이 생기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근래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 시비’ ‘불공정 논란’이 늘어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급작스런 정규직화로 노노 갈등을 촉발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와 ‘조국 자녀 입시 특혜’ 등의 논란을 거치면서도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공정을 기치로 내건 정부에서 이런 시비가 더 잦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