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만 900억원 ‘파격 조건’
에이비엘바이오는 “사노피와 파킨슨병 치료제(ABL301)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발표했다. 총 계약 규모가 1조2720억원(약 10억6000만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기술이전이다. 이 계약을 통해 사노피는 ‘ABL301’을 전 세계에서 독점적으로 상업화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금액 못지않게 계약 조건도 파격적이다. 전체 계약 금액 1조2720억원 중 900억원이 계약금이다. 치료제가 효능과 안전성 등의 문제로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에이비엘바이오가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다. 여기에 ‘단계별 성과급’ 개념인 단기 마일스톤도 540억원을 주기로 했다. 이르면 올해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제품 출시 이후 매출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다.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을 포함한 1440억원은 전체 계약 금액의 11%로, 국내에서는 찾기 어려운 파격적인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벤처는 물론이고 대형 제약사인 한미약품이 2015년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당뇨병 신약 후보물질 이후 계약 조건이 가장 좋다”고 했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그만큼 ABL301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래 상대방도 의미가 있다. 사노피는 2020년 전 세계에서 화이자, 로슈, 노바티스, 존슨앤드존슨, MSD에 이어 여섯 번째로 의약품을 많이 판 회사다.
뇌 장벽 뚫는 ‘이중항체’
사노피가 사 간 파킨슨병 치료 후보물질 ABL301은 에이비엘바이오의 이중항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깃을 한 손(단일항체)이 아니라 두 손으로 공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한 손에는 파킨슨병 원인 단백질을 차단하는 약물이, 다른 손에는 뇌혈관장벽(BBB)을 뚫을 수 있는 약물이 달려 있다.파킨슨병은 뇌에 알파 시누클레인이라는 단백질이 쌓이면서 신경의 활동을 억제해 생기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타깃은 명확하지만 아무리 좋은 약물을 넣어도 뇌혈관장벽을 뚫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뇌혈관장벽은 뇌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뇌혈관장벽을 뚫을 수 있는 열쇠(IGF1R)를 달아 응집된 알파 시누클레인에 약물이 도달하도록 했다. 단일항체보다는 크지만 결과적으로 뇌혈관장벽 투과율을 높이는 기술이 사노피의 선택을 받아냈다. 이중항체인 ABL301은 단일항체보다 뇌혈관장벽 투과율이 13배 높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ABL301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전 단계인 전임상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1상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뇌질환 공략 청신호
에이비엘바이오의 뇌질환 공략 이중항체 플랫폼은 파킨슨병에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가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 치매와 근위축성측삭경화증(루게릭병) 치료제도 이 플랫폼을 활용한다. 뇌혈관장벽을 뚫는 열쇠에 어떤 약물을 달아주느냐의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늘면서 이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사노피와의 기술이전 계약으로 우리가 보유한 이중항체 기술력의 무한한 가능성이 입증됐다”고 했다. 사노피와의 기술이전 계약 체결 소식에 이날 에이비엘바이오 주가는 상한가로 직행해 2만6150원에 장을 마쳤다.
■ 이중항체
질병을 유발하는 인자 한 개에만 작용하지 않고 두 개의 인자에 동시 작용하는 항체. 하나의 인자에만 작용하는 단일항체보다 효능이 더 뛰어나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