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서초의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 직원이 주문이 들어온 상품들을 갖고 나와 문앞 에 서 있던 배달로봇 ‘뉴비’의 뚜껑을 열었다. 제품을 넣자 뚜껑이 닫히고 뉴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행방식은 로봇청소기와 흡사했다. 사방에 달려 있는 카메라로 도로와 사람, 장애물을 인식해 피해갔다. 최대 속도는 시속 7km로 평소에는 사람보다 현저히 느리다. 근처 아파트 단지 어린이집 앞에 멈춰선 뉴비는 주문자가 QR코드로 본인인증을 하자 뚜껑을 열어줬다.
최근 유통 및 배달업계에서 배달로봇이 화두다. 편의점들과 배달앱 배달의민족 등은 실내 전용 로봇부터 뉴비같은 주행 로봇까지 배달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일 만한 로봇들을 현장에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상용화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11월 서초아이파크점에 뉴비를 도입했다. 현재 운영하는 2대의 뉴비는 반경 300m 안에서 자율주행으로 배달을 해 준다. 횡단보도도 별도의 통제 없이 신호에 맞춰 건넌다. 배달 범위는 소비자가 있는 건물 앞까지다.
국내에선 배달의민족이 2017년부터 배달로봇에 뛰어들었다. 배달의민족은 지난달 경기도 수원 광교의 한 주상복합 단지에서 식당부터 소비자의 집 앞까지 로봇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소비자는 주문을 한 후 알림이 오면 현관문을 열고 딜리드라이브에서 본인 인증을 한 후 음식을 꺼내면 된다.
‘도어 투 도어’ 로봇배달 서비스는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세계 최초다. 배달의민족은 이를 위해 아파트 1000여 세대에 각각 QR코드를 부여해 배달로봇 ‘딜리드라이브’가 모든 세대의 위치를 인식하게 했다. 배달의민족 관계자는 “아파트와 협의해 공동현관문 출입이나 엘리베이터 연동 문제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적용했다”며 “배달로봇이 오면 현대엘리베이터 관제시스템과 연동돼 엘리베이터를 호출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배달의민족은 이 외에도 영등포 주상복합 단지에서 실내로봇 운영도 하고 있다. 배달기사가 아파트 입구까지 오면 음식을 받아다 소비자 현관문 앞으로 가져다 준다.
유통·배달업계는 배달로봇이 배달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2km 내 근거리 배달이나 오토바이로 이동하기 불편한 곳 등은 배달 기사들이 선호하지 않아 배달기사 지정이 잘 되지 않거나 배달료가 오른다. 배달로봇은 기사 대신 이런 곳을 갈 수 있다. 실내로봇들은 배달원들이 아파트 공동현관문과 엘리베이터 등을 거치는 수고와 시간을 덜어줘 배달시간을 줄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사람 배달기사를 대체한다기보다는 이들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차원”이라며 “배달로봇이 상용화되면 로봇 배달은 건당 1000원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배달로봇의 자율주행 배달 서비스는 도로교통법, 생활물류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가로막혀 있다. 도로교통법상 배달로봇은 인도와 횡단보도, 차도를 혼자 이용할 수 없다.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생활물류법상 운송 수단에도 배달로봇은 속해 있지 않다. 뉴비를 제조한 로봇업체 뉴빌리티의 김현곤 헤드는 “자율주행 로봇은 카메라가 다수 달려있어 배달 과정에서 행인들이 찍힐 수 있는데,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문제 여지가 있다”며 “현재 국내에서 배달로봇 시범운영을 하는 곳은 모두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은 기업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개선 의지가 있다. 지난 4월 정부 합동으로 '2021년 로봇산업 선제적 규제혁신 로드맵'을 내놓고 2025년까지 배달로봇의 보도 통행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관계 부처만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경찰청 등 다수라 빠른 협의가 쉽지 않다.
한국 기업들이 규제가 풀리길 기다리는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은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16년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 등에서 배달로봇 주행을 허가했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얀덱스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며 한국 배달시장 공략에 나섰다. 정보기술(IT)업계 관계자는 “얀덱스코리아가 지난해 말 설립 후 쿠팡이츠 등 한국 배달앱에 접촉하는 것으로 안다”며 “성장성 높은 한국 배달시장에서 자율주행 로봇은 아직 블루오션이라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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