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던 한국 영화가 모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 5일 올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개봉한 ‘경관의 피’에 적잖은 관객이 몰린 것. 이에 따라 2년 넘게 이어진 외화 쏠림 현상이 해소될지 관심이 모인다. 주목받는 한국 영화들의 개봉이 이어지는 만큼, 세계 4위 규모(16억달러·2019년 미국영화협회 집계)인 국내 영화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반격 물꼬 튼 ‘경관의 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일 ‘경관의 피’는 10만4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개봉 당일 1위에 올랐던 데 비해 다소 기세가 꺾였다. 3주간 정상을 지킨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이 12만5000여 명을 동원해 1위를 고수했다. 하지만 상영점유율은 ‘경관의 피’ 29.3%, 스파이더맨 29.4%로 비슷했다. 경관의 피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국내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한 글로벌 히트작 ‘스파이더맨’을 넘어설 수 있을 지 주목된다.이규만 감독이 연출한 ‘경관의 피’는 출처 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으며 독보적인 검거 실적을 자랑하는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반장 박강윤과 그를 비밀리에 감시하는 임무를 맡게 된 원칙주의자 경찰 최민재의 이야기를 그린 범죄물이다. 조진웅이 박강윤을, 최우식이 최민재를 연기했다. ‘경관의 피’ 측은 초반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봉 당일 출연 배우가 총출동해 극장 무대인사에 나선 데 이어 지난 주말에도 주연배우 조진웅과 권율 등이 극장을 찾아 관객과 만났다.
외화 쏠림 뚫고 韓영화 약진할까
연초부터 ‘경관의 피’가 선전하면서 지난 2년간 움츠러들었던 한국 영화의 약진이 본격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역 조치가 강화되면서 대작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개봉을 미뤄 왔다. ‘스파이더맨’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 만큼 승부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 흥행성을 갖춘 작품이 잇달아 출사표를 던지고 나섰다.‘경관의 피’에 이어 오는 12일 ‘특송’이 개봉한다. ‘특송’은 예상치 못한 배송 사고로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 특송 전문 드라이버 은하(박소담 분)의 화려한 추격전을 담은 영화다. ‘기생충’에서 남매로 나왔던 최우식·박소담이 흥행 대결을 펼치는 모양새라 더욱 관심을 끈다.
한국 영화의 본격적인 부활 여부는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으로 가려질 전망이다. ‘비상선언’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항공재난 영화다. 흥행에 성공하면 침체된 국내 영화 시장의 분위기 반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흥행 신화를 쓴 김용화 감독의 우주 SF 신작 ‘더 문’, ‘해운대’ ‘국제시장’ 등을 만든 윤제균 감독의 신작 ‘영웅’에 대한 기대도 크다.
시장을 선점한 외화 물량 공세도 만만찮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12일 개봉하고, 다음달 19일에는 스릴러 영화 ‘나일 강의 죽음’이 관객을 맞이한다. ‘원더 우먼’ ‘레드 노티스’ 등의 주역 갤 가돗과 ‘레베카’ 등에 출연한 아미 해머를 내세웠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팬덤이 탄탄한 톰 홀랜드가 주연을 맡은 ‘언차티드’도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파이더맨’은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도 작품성을 갖추면 충분히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본격적인 회복 국면을 맞은 영화 시장을 노린 쟁탈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