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택은 천재 소년이었다. 어린 나이에 영어와 프랑스어를 줄줄 말했고, 자기가 개발한 방식대로 수학 문제를 술술 풀었다. 커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된 그의 취미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이었다. 그런 그가 복합리조트타운 설계를 의뢰받고 지중해의 튀니지령 제르바섬으로 향하다가 강도를 만나 바다로 뛰어드는데….
언론인 출신 작가 고승철 씨가 신작 장편소설 《파피루스의 비밀》(나남)을 출간했다. 《은빛 까마귀》 《소설 서재필》 등에 이은 다섯 번째 작품이다. 한국을 벗어나 이집트까지, 현재에서 파피루스가 쓰인 5000년 전까지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이 대폭 확장됐다.
눈치 빠른 이들은 감을 잡았을 터인데, 주인공 임호택은 피라미드를 만든 건축가 임호텝이 현생화한 모습이다. 발음뿐 아니라 건축가란 설정까지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인물 특성에 부합한다. 저자는 둔한 독자까지 배려해 임호택의 대학 스승과 고대 이집트 문명의 부활을 바라는 이들의 입을 통해 그가 임호텝의 재현임을 밝힌다.
바다에서 마약 밀수선에 옮겨 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그를 심문하던 이집트 경찰은 그의 취미가 상형문자 해독임을 알아채곤 그의 신병을 파라오 아멘호텝 3세를 자칭하는 노인에게 넘긴다. 낯선 곳에 감금된 그는 5000년 전 기록된 희귀문서의 해독을 강요받는다. 그 문서에는 빅뱅 이론부터 지구 구체설, 지동설, 태양계, 세균의 존재까지 인류 지성사를 거스르는 경천동지할 내용이 담겨 있다.
작가는 주인공이 파피루스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대면하는 ‘삶’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고대 이집트 신화에 녹여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도 곱씹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가상의 문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에 빗댄 5000년 전 파피루스 존재처럼 선배 작가들의 걸작 소설에 대한 오마주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동서양을 넘나드는 저자의 박학다식도 덤으로 접할 수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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