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기업의 메모리 양산기술이 세계 최고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연구개발(R&D) 수준까지 미국과 중국보다 앞선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종호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사진)는 3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평가했다.
이 교수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술 권위자로 꼽힌다. 그가 국제 반도체 학계에서 명성을 떨친 것은 2001년 세계 최초로 3차원 반도체 소자인 ‘벌크 핀펫(FinFET)’ 기술을 개발하면서부터다.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구조가 상어 지느러미(Fin)처럼 생겨 핀펫이란 이름을 얻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반도체 회사의 핵심 표준기술로 지금도 채택되고 있다.
1988년 문을 연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는 30여 년 동안 2000명에 육박하는 석·박사를 배출했다. 이들은 주요 반도체 기업으로 진출해 반도체 경쟁력을 높였다. 연구소가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기술은 AI반도체다.
그는 AI의 소프트웨어인 딥러닝 분야는 미국과 중국이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어 국내 기업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AI의 하드웨어 분야는 반도체의 새로운 영역이고 국내 기업이 해볼 만하다고 진단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반도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에 비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 교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메모리 양산기술이 앞서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 수준도 앞설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라며 “AI반도체 기술은 이미 미국과 중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AI반도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해법으로는 창의적 인재 개발을 꼽았다.
이 교수는 “이론에 밝으면서도 실제 공정 경험을 충분히 쌓고 창의적 마인드를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반도체 실험과 공정을 수없이 반복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신입사원을 뽑을 때마다 반도체 공정을 경험해본 인력이 없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기업에서 기초부터 교육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대학에도 반도체 공정을 경험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지만 시설과 장비가 낙후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설계 등 한 분야를 잘하는 인재에게 공정 등 다른 분야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AI반도체 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래 기술에 대비한 인력양성은 대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며 “교수 충원 및 연구시설 등 인프라 확보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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