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작가들도 장편을 쓰기 위해서라면 몇 년을 끙끙대곤 하는 판에, 신인이 장편을 쓰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을 줄 안다. 그래서 신춘문예 장편 공모 심사에 임할 때는 좀 너그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작품을 기대하는 대신, 선별의 기준은 대체로 두 가지다. 가능성이 보이는가, 기성 작가의 평균작 정도에 미치는가.
140여 편에 이르는 투고작 중 여섯 편 정도가 그 기준을 통과했다. ‘별 따는 복권방’ ‘연기와 바람의 숲’ ‘개미들의 꿈’ 이렇게 세 작품에서 심사위원들이 본 것은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각각 삽화적 구성의 비유기성, 너무 힘을 들인 만연체, 관습적인 주제의식 같은 흠결이 눈에 띄었다. ‘파주’ ‘열두 번째 거짓말’ ‘방학’ 세 작품은 기성 작가가 쓴 평균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세 작품을 두고 논의가 길어졌다.
논의 도중 ‘파주’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다루고 있는 공동체가 그 외부, 즉 현실 사회나 역사적 맥락과 무관할 정도로 지나치게 자족적이란 점이 자주 거론되었다. 나머지 두 작품을 두고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당선작은 한 편일 수밖에 없는 법, 두 본심 위원은 결국 ‘방학’에 손을 들어 주었다.
두 편 다 일종의 성장소설이었으나 ‘열두 번째 거짓말’의 화자가 가지고 있는 죄의식은 어딘가 계기가 약해 보였다. 그보다는 삶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가지지 않은 채로 철저한 마키아벨리적 삶을 택하게 되는 한 주체의 탄생 과정을 그린 ‘방학’은 서늘하면서도 통쾌했다. 거기에 정확한 냉소와 차가운 독설의 문체는 읽는 이에게는 덤으로 주어지는 재미였다. ‘방학’의 작가에게 축하를 전한다.
■ 예심 심사위원
△박혜진 문학평론가
△김성중·손보미·정용준·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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