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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프리즘] 野性 잃어가는 금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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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시행된 지 5개월이 흘렀다. 정부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할 것 같다. 한때 월 단위로 5조원을 웃돌던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지난달 2조4000억원으로 확 줄었다. 치솟던 집값도 안정세다. 일부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로 전환했다. 엉터리 부동산 정책이 집값을 밀어올렸지만 이를 잡겠다며 기어이 돈줄을 틀어막은 게 효과를 본 것이다.

부작용도 많았다. 전세자금 대출이 막혀 이 은행, 저 은행 문을 두드려야 했던 ‘대출난민들’, 대출금리 인상에 이자 부담이 늘어난 기존 차주들, ‘대출 사다리’가 무너져 내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2030세대들의 아우성이 들끓었다. 뒤늦게나마 실수요자를 구제하는 보완책이 나오고, 은행들이 다시 대출 창구를 열면서 대출절벽 사태는 진정됐다. 총평하자면 잡음이 있었지만 집값을 잡고, 가계대출 부실위험도 관리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한편으론 촘촘한 총량 규제 탓에 경쟁은 사라지고 대형사들의 과점 체제는 더 공고해지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이 “딱 이만큼만 팔아라”고 하면서 금융업권별로, 사(社)별로 자산에 비례해 가계대출 할당량을 정해주고 있어서다. 대형 은행의 올해 할당량은 ‘전년 대비 증가율 6%대’다. 이 선을 넘으면 내년에 불이익을 가하겠다는 엄포에 일부 은행들은 몇 달간 대출 창구를 닫아야 했다.

대출 시장은 정해진 ‘파이’만 먹을 수 있는 게임이 됐다. 그렇다보니 금융사들은 기업 본연의 야성(野性)이 무뎌지고 있다. 고객을 더 끌어오려는 경쟁 인센티브가 사라졌다. 오히려 디마케팅 차원에서 가격(대출금리)을 올리고 있다. 각종 우대금리를 없애거나 줄이고, 가산금리를 높이는 방식이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고객을 빼앗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수요가 넘치는 데다 경쟁사들도 할당량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금융당국의 묵인 아래 ‘금리담합’이 이뤄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쟁 실종 현상은 내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은 내년 대형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올해보다 더 줄인 4.5%로 정했다고 한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시장점유율 순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이면 백날 노력해도 2~3등이 1등을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다. 신용카드, 캐피털, 저축은행 업계도 마찬가지다. 금융산업 전반에 경쟁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 원리가 무너지고 있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인터넷전문은행들도 손발이 꽁꽁 묶여 있다. 점포가 없는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는 비용구조가 가벼워 가격경쟁에서 유리하다. 신속·편리함에 가격경쟁력까지 더하면 5대 은행이 과점형태로 장악한 소매금융 시장을 공략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들도 총량 규제에 직격탄을 맞았다. 100%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개발해놓고도 판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메기 효과’가 서비스 경쟁에서 멈추고 본격적인 가격 경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카뱅과 케뱅의 대출자산은 각각 26조원, 7조원이다. 지난 10월 초 출범한 토뱅은 대출한도 5000억원을 열흘 만에 소진하고 여태껏 대출셧다운 상태다. 금융당국이 서로 처지가 다른 메기 3인방에 내년도 대출한도를 어떻게 정해줄지도 관심사다. 경영진은 당국의 ‘선처’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노심초사하고 있다. 메기들이 당국의 낚싯바늘에 딱 걸린 형국이다. 인터넷은행마저 혁신DNA와 야성을 잃어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경쟁이 없는 곳에서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금융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사의 건전성을 훼손할 정도의 출혈·과당 경쟁은 경계해야 하지만 건전한 경쟁까지 막아서는 곤란하다. 지금과 같은 대출 총량 규제가 가뜩이나 낙후된 국내 금융산업의 생태계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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