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체 대표 A씨는 코로나19 고용유지지원금을 허위로 타낸 혐의로 올해 초 재판에 넘겨졌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직원 16명에게 휴직수당을 준 것처럼 꾸며 지원금을 신청했다. 그렇게 지난해 5~8월 네 차례에 걸쳐 국고보조금 1억177만원을 타냈다. 법원은 지난 8월 그에게 징역 1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 사건처럼 부정수급으로 새어나간 나랏돈이 한 해에 최고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가 퍼진 지난해부터는 코로나 지원금을 노린 부정수급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국고보조금을 100조원까지 늘렸지만, 부정수급 점검·환수 주체는 제각각이어서 혈세 누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7~10월 부정수급 510건 검거
23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7월 12일부터 10월 31일까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비리를 집중 단속한 결과 총 510건을 적발해 1299명(구속 17명)을 검거했다. 같은 기간 검거한 부정수급액은 459억원이다.이번 단속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복지 수요가 늘고 국고보조금 규모가 매년 커지면서 시행하게 됐다. 부정수급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범죄 유형별로는 가격이나 실적을 부풀려 보조금을 받는 등의 ‘보조금 허위신청’이 978명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전남에서는 일자리 창출 보조금 122억원을 부정하게 타낸 일당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일자리센터를 설립한 뒤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허위 사업계획서와 정산보고서를 제출해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에서도 사업계획서를 부풀려 중소벤처기업부가 시행한 ‘스마트공장 보급사업’의 보조금 9억원을 부정수급한 일당 18명이 검거됐다. 이 밖에 보조금을 용도 이외로 쓴 사례가 231명, 보조금 횡령은 90명이었다.
○매년 1400억~2000억원 혈세 빠져나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경찰이 검거한 부정수급액은 2018년 1807억원, 2019년 2040억원, 지난해 1465억원에 이른다. 부정수급 규모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수사기관인 경찰과 별개로 기획재정부가 2017년부터 ‘e나라도움시스템’을 통해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통계를 취합해 관리하고 있다. 이 통계를 보면 2017~2020년 부정수급 적발 건수는 40만9075건으로 같은 기간 경찰 검거 건수(8441건)보다 48배나 많다.전문가들은 국가보조금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에 반해 정부의 감시 시스템은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은 각 부처가 점검한다. 부정수급액 환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부처마다 부정수급 점검 기준이 다르고 단속 역량도 제각각이라는 설명이다.
불필요하게 많은 국고보조금이 부정수급을 부추긴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확정 예산 기준으로 2017년 59조6000억원이던 국고보조금은 매년 10조원 가까이 늘며 올해 97조9000원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기재부가 지난해 시행한 국고보조사업 연장 평가 결과, 평가 대상 사업 241개 중 사업 방식 변경이 필요한 사업은 53.9%, 감축은 28.2%였다. ‘정상 추진’ 판정을 받은 사업은 10%에 그쳤다.
박상진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부정수급은 개인이 부당한 이득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며 “중대한 범죄 행위로 인식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