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년의 여인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의 젊은 여성은 단잠에 빠져 있다. 짙은 명암 속, 대조적인 모습의 인물을 찍은 이 장면은 사진가 김선재가 1998년 비둘기호 장항선 첫 열차에서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이다. 모든 역에 정차하던 가장 느린 기차였던 비둘기호는 노선별로 운행이 중단되고 있었다. 충남 장항과 천안을 오가는 장항선은 1998년 11월 30일까지 운행될 예정이었다. 사진가를 꿈꾸던 청년 김선재는 장항선 비둘기호의 마지막 한 달 동안 열차 안 풍경을 기록했다. 커다란 대야를 이고 장으로 향하는 할머니들, 검정 교복 차림의 장난기 가득한 고교생들, 고단함을 못 이겨 단잠에 빠진 직장인 등 비둘기호의 희로애락이 작가의 카메라에 담겼다.
2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사진들로 엮은 책 《장항선 비둘기》가 출간됐다. 김씨의 작품들은 평범한 일상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사진의 힘’이다. 올해 온빛사진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사진들은 오는 28일부터 1월 9일까지 류가헌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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