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 글로벌 경매사인 크리스티의 뉴욕 경매에서 미국의 디지털 아트작가 마이크 윈켈만(활동명 ‘비플’)의 작품 ‘에브리데이즈:첫 5000일’이 수수료 포함 6900만달러(약 780억원)에 낙찰됐다. 문제는 이 작품이 손에 잡히는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2007년부터 매일 온라인에 올린 이미지를 모아 JPG 그림 파일로 만든 뒤 NFT(대체불가토큰)로 발행한 것이었다. 크리스티가 800억원에 가까운 초고가에 판매하면서 낯설기만 했던 NFT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폭증했다.
올 글로벌 경매 시장에선 NFT가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화두’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는 홍콩에서 글로벌간담회를 열고, 올 한 해 이 회사가 중개한 미술품의 낙찰 총액이 71억달러(약 8조4639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액수다. 전년 대비 54% 증가했다.
특히, 이 회사가 개척한 NFT 경매에 관심이 집중됐다는 점이 각종 수치로 증명됐다. 이 회사의 올 NFT 판매액은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에 달했다. 비플의 ‘에브리데이즈:첫 5000일’이 6900만달러를 기록하며 시장의 문을 연 뒤 같은 작가의 ‘휴먼 원’이 2898만5000달러(약 345억원)에, 앤디 워홀의 1987년작 ‘무제:캠벨 수프 깡통’ 그림 파일이 117만달러(약 14억원)에 낙찰됐다.
NFT로 만든 ‘큐리오 카드’ 30세트도 393이더리움(약 15억원)의 경매가를 기록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예술 자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한 것으로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예술품에 ‘원본’ 인증을 한 것이다.
크리스티는 올 NFT 경매에서 100만달러(약 12억원) 이상 금액으로 참여한 입찰자가 34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입찰자 중 82.8%(29명)가 크리스티의 신규 고객이었다. 35세 미만 고객이 25명에 달할 정도로 NFT 구매자들의 연령대가 낮았다. 크리스티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자) NFT 구매자 대부분이 인터넷 사용에 능숙하거나 인터넷 관련 기업가라고 밝혔다.
최근 들어 NFT 구매 컬렉터가 전통적인 미술품을 구매하던 ‘큰손’들로도 확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티는 “전통적인 수집가들도 NFT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한다”며 “실존하는 예술과 디지털 예술의 경계가 점점 중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NFT를 앞세운 신시장 개척뿐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인기 작가’의 고가 작품 판매가 줄을 이으면서 경매 시장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충격을 확실하게 벗어난 모습이었다. 피카소의 ‘마리 테레즈 초상’은 1억340만달러(약 1167억원)에, 바스키아의 ‘인 디스 케이스’는 9310만달러(약 1047억원)에 낙찰됐다. 올해 평균 낙찰률은 87%에 달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도 높아졌다. 박서보와 정상화의 작품이 이 회사 이브닝 세일에 포함됐다.
기욤 세루티 크리스티 최고경영자(CEO)는 “NFT와 같은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면서 새로운 작가와 과소평가되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고 젊은 고객층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