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사의 상징 1고로가 전기로로 대체된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안고서다. 고로 기반 철강사의 대표격인 포스코의 전기로 재도입은 단순히 쇳물 생산 방식을 바꾸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세계 쇳물 생산(연 19억t)의 약 70%를 차지하는 고로의 퇴장은 원료 단계부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 15년 만에 HBI 생산 나서
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호주에 200만t 규모의 직접환원철 생산기지 구축을 위한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열연생산용 전기로(미니밀)에 투입할 원료 공급을 위해서다. 포스코가 1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철광석 광산 로이힐 인근이 유력한 입지로 꼽힌다. 포스코가 해외에 직접환원철 생산 기지를 세우는 것은 1997년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에 설립한 합작사 포스벤을 2006년 매각한 지 15년 만이다.직접환원철은 천연가스를 환원제로 사용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해 만든 철 함유량 90~95%의 반제품이다. 알갱이 형태의 제품인 DRI를 전기로 공정에 활용하기 쉽게 덩어리로 재가공한 것이 HBI다. 포스코는 HBI를 전기로에 투입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HBI를 활용한 전기로를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보고 있다. 포스코는 ‘2050 탄소중립’ 계획의 일환으로 HBI를 활용한 두 기의 전기로 가동에 쓰이는 전력도 탄소 배출이 적은 액화천연가스(LNG)와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방침이다.
철강업계는 1996년부터 2015년까지 고철·용선 등을 활용해 미니밀을 운용했던 포스코가 이번엔 HBI를 주원료로 낙점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연간 수천만t에 달하는 고로 생산량을 대체하기 위해선 공급량이 한정된 고철보단 철광석 기반 원료인 HBI를 쓸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전기로로 고로를 대체하는 것은 포스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르셀로미탈은 노후 고로의 미니밀로의 전환을 추진하며 독일, 벨기에, 중남미 등에 직접환원철 생산기지 구축에 나섰다. US스틸도 지난 9월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투자해 연산 300만t 규모의 미니밀을 짓겠다고 밝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새롭게 들어서는 전기로 상당수가 직접환원철을 원료로 채택하고 있다”며 “철광석과 고철이 양분하던 철강 원료 시장의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원료 확보 전쟁
고로의 전기로 전환은 원료 확보를 둘러싼 기업들의 경쟁을 심화시킬 전망이다. 이미 철근, 봉형강을 생산하는 일반 전기로의 주원료인 고철을 두고 ‘1차전’이 발발한 상태다. 고로사들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방법으로 고로 공법에 투입하는 고철 비중을 높이면서다.기존의 원료들과는 다른 HBI의 생산 입지도 기업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HBI 생산 기지는 대부분 중동, 북아프리카 등 천연가스가 풍부한 지역에 있다. 철광석을 원료로 하지만 그보다는 천연가스 공급이 쉬운 지역을 확보해야 비용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환원철의 한 해 생산량은 1억t 정도다. 전체 철강 원료시장의 5% 수준에 불과하다. 수급 자체가 한정적이다 보니 다른 원료와 달리 체계적인 유통 시장 없이 대부분의 물량이 업체 간 장기 공급 계약에 묶여 있다. 포스코가 기존 업체를 활용하지 않고 자체 법인 설립에 나선 이유다. 한 철강사 구매담당 임원은 “철광석과 천연가스 공급이 용이하면서 제철소까지 이송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도 감안한 생산 기지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비용·저품질이란 ‘태생적 한계’를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품질을 맞출 수 있는 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됐지만 비용이 문제”라며 “친환경 철강 제품에 높은 비용을 지급하는 고객사가 늘고 있어 과거와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 미니밀(Mini Mill)
연산 300만t가량을 생산하는 소규모 전기로 기반 제철 설비를 통칭하는 말이다. 당초 철근 및 봉형강류를 생산하는 전기로를 뜻했지만 1989년 미국 뉴코어가 전기로 기반으로 열연 등 판재류 생산 공정을 개발하면서 의미가 확장됐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