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세계 4위 자동차 제조회사인 스텔란티스가 ‘소프트웨어 데이’라는 글로벌 행사를 열었다. 스텔란티스는 올해 초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 그룹과 피아트크라이슬러(FCA)가 50 대 50 합병을 통해 설립한 다국적 기업이다. 푸조, 피아트, 크라이슬러 등 브랜드만 14개다. 글로벌 자동차회사가 특정 부품이나 기술을 소개한 이벤트는 작년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 올해 폭스바겐의 ‘파워 데이’ 이후 세 번째다. 테슬라와 폭스바겐은 전기차, 특히 핵심 부품인 배터리에 초점을 맞췄다면 스텔란티스는 소프트웨어를 그 중심에 놓았다.
테슬라 및 폭스바겐의 행사에서 보듯이 미래차의 핵심에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전동화가 있다. 테슬라와 같은 선두주자의 광폭행보가 확연한 가운데 제너럴모터스(GM) 및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기존 제조사는 물론 루시드, 리비안과 같은 스타트업까지 적극 동참하는 등 전동화의 생태계는 그야말로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 자동차회사가 특정 아이템으로 행사를 한다면 전기차 내지는 배터리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스텔란티스는 소프트웨어라는 주제로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는 차별점이 있다.
발표 내용을 요약하면 올해 1200만 대의 스텔란티스 차량에서 얻어지는 소프트웨어 수입이 4억유로 정도인데, 이를 2026년 2600만 대에서 40억유로, 그리고 2030년에는 3400만 대 차량에서 200억유로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참고로 스텔란티스는 2019년 연 생산량 870만 대, 매출 1700억유로 규모의 회사다. 이제 자동차라는 하드웨어 회사에서 수익성이 높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회사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26년까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300억유로를 투자할 계획임도 밝혔다. 본격적으로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는 정보기술(IT) 회사적 발상이 자동차 업계에서도 구체화되면서 연관 재무적 수치도 함께 발표됐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화는 ‘SDV(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라는 용어로 구체화되고 있다. 차량 내 전기·전자(E&E) 아키텍처를 정의하면서 소프트웨어를 담는 반도체로 이뤄진 전자제어장치(ECU)와 이들 간의 데이터 이동량에 맞는 네트워크를 구체화하고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런 E&E 아키텍처에 담길 소프트웨어의 운용체제와 구사 언어는 제조사별로 속속 정의·발표되고 있다.
SDV의 기술적 내용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스마트폰과 같이 고객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휴대폰에 익숙한 고객에게 통신망과 연결된 고가 자동차가 휴대폰만 못하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미래차는 덩치가 큰 통신기기가 되므로, 정보통신기술(ICT) 회사가 지향하는 사업모델과 상당히 중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운전자 및 승객의 이동 및 사용 패턴을 자산화해 데이터사업을 추진하려는 전략이 태동하는 것이다.
이제 SDV는 대세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 제조사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데이터사업에 관한 한 ICT 회사에 비해 후발주자다. ICT회사와의 파트너십은 필수다. 소프트웨어가 복잡해지고, 이를 담는 반도체가 대량으로 필요해지기에, 근자의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사태는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GM이 퀄컴과, 스텔란티스가 폭스콘과 제휴하듯이 글로벌 짝짓기가 활발해질 것이다.
이런 짝짓기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기적 안목의 내재화 움직임은 더욱 거셀 것이다. 그러나, 짝짓기를 하든지 내재화를 하든지 간에 분명한 것은 SDV를 향한 E&E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운용체제를 내실 있게 정비하며 소프트웨어 인력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일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애플과 테슬라의 예에서 보듯이 소프트웨어를 담을 반도체의 설계검증 능력도 갖춘다면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와의 협업도 주도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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