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청와대의 공개 반발에도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풀어줘야 한다는 소신을 좀처럼 굽히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요직을 장악한 기획재정부에 대한 이 후보의 뿌리 깊은 불신이 근저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 경제관료들을 중용하면서 일종의 ‘인의 장막’에 갇혀 있는 것을 이 후보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靑, 연일 李에 반대 의견 표명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는 17일 “이 후보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권 말로 접어들면서 기재부 관료들에게 포섭 내지 포획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문제를 꺼내든 건 더 이상 기재부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소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이 후보는 지난 12일 경북 김천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에서 “다주택자 ‘매물 잠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1년 정도 중과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문제를 처음 꺼내들었다.
이후 청와대는 거의 매일같이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 이철희 정무수석은 지난 14일 민주당 지도부를 찾아가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이호승 정책실장은 이틀 뒤인 16일 라디오에 나와 “유예 논의가 있으면 오히려 매물이 안 나오고 잠기게 된다”며 반대 의견에 재차 힘을 실었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연내 법안 처리 등 강행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그는 16일 인터넷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한 번 정한 것을 웬만하면 바꾸지 않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상황이 달라진 점을 고려해 유연하게 1년만 바꿔보자는 것”이라며 청와대의 ‘정책 일관성’ 논리를 지적했다.
이 후보는 특히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의)정책적 과오가 없었다 할 수 없다”면서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료에게 뺏긴 국정주도권 되찾겠다”
이 후보가 이처럼 특정 이슈를 두고 청와대와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이 후보는 손실보상이나 지역화폐 등 사안에서 정부를 강력 비판하면서도 청와대나 문 대통령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다.지난달에는 청와대의 반대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주장을 철회했다. 당시 철회 이유로 민주당은 “재원으로 쓸 초과세수 계산이 잘못됐다”는 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물밑에서 강력한 반대의견을 낸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실제 청와대는 이 후보가 주장을 철회하자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이번 다주택자 양도세 이슈에서는 이 후보 스스로 문 대통령과 대립 구도를 피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과 차별화로 중도층 표심을 얻겠다는 노림수와 함께 경제관료들로부터 국정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이 후보 주변 인사들의 의견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엔 기재부 출신 관료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부동산 정책라인의 경우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은 물론 국토교통부 장관, 금융감독원장 등에 비관료 출신이 대거 중용됐다. 정권말인 현재는 기재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을 포함한 6개 보직 모두 관료 일색이다.
그간 이 후보는 기재부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내왔다. 그는 지난 1월 21일 손실보상에 소극적인 기재부를 향해 “대한민국은 기재부의 나라가 아니며 국가의 권력과 예산은 국민의 것”이라고 일갈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