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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이 만든 토네이도…美를 할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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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네이도가 이렇게 큰 피해를 남긴 것을 본 적이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켄터키주 메이필드를 찾아 이렇게 말했다. 강력한 토네이도로 집과 일터를 잃어버린 주민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이날 미네소타엔 또 다른 토네이도가 찾아왔다. 12월 이 지역에 토네이도가 등장한 것은 기상관측 이후 처음이다.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 기온이 미국 전역에 재난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기상 이변 속출하는 미국

사망 89명, 실종 16명. 지난 10~11일 미국 중서부 지역을 할퀸 토네이도가 남긴 인명피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 평온한 휴식을 준비하던 켄터키와 일리노이 테네시 아칸소 미주리 등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과 가족을 잃었다. 사망자 명단엔 생후 2개월 된 영아 등 어린이도 12명 있었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애드워즈빌 물류창고가 무너져 최소 직원 6명이 숨졌다. 메이필드의 양초 공장에서도 근로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년 5월 미주리 남서부에서 170여 명의 인명피해를 낸 토네이도 이후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하룻밤 새 미국 9개 주를 강타한 토네이도의 숫자는 최소 44개로 추정된다. 당초 한 개의 토네이도가 250마일(402㎞)을 이동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미국 기상청은 이 토네이도가 지상에서 206㎞를 이동했다고 바로잡았다. 전체 경로는 최소 263㎞다. 2시간14분간 지속된 이 토네이도의 폭은 1.6㎞, 최대 풍속은 시속 306㎞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켄터키에서만 주택 1000여 채가 파괴됐다.

재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닷새 뒤인 15일 중서부 곳곳엔 시속 121㎞를 넘는 돌풍이 55건 몰아쳤다. 미국에서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돌풍이 발생한 것은 지난해 8월 10일 53건이었다. 역대 최다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같은 날 네브래스카 아이오와 캔자스 등에 상륙한 토네이도도 19개에 이른다. 미네소타에선 두 개의 토네이도가 발생했는데 이 지역 역사상 12월에 토네이도가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전 기록은 1931년 11월 16일이었다.

돌풍과 토네이도, 모래 폭풍이 잇따르면서 최소 5명이 숨졌다. 콜로라도 등 4개 주에서 40만 곳 넘는 주택과 사무실, 공장 등에 전기 공급이 끊겼다. 캔자스시티 국제공항이 정전됐고 관제사들은 긴급 대피해야 했다. 플라이트어웨어닷컴에 따르면 덴버 국제공항에서 541편의 항공기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146편은 취소됐다.

강풍에 휩쓸려 트레일러 수십 대가 전복됐고 콜로라도와 캔자스를 잇는 고속도로가 일시적으로 폐쇄됐다. 모래바람이 앞을 가려 가시거리는 제로에 가까웠다. 산불 신고도 잇따랐다. 브라이언 바젠브루치 미국 기상청 기상학자는 “한 번에 이렇게 많은 피해를 남긴 폭풍이 발생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12월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했다.
따뜻한 겨울 탓에 기상 재난 속출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토네이도는 최대 풍속이 시속 137㎞인 F0 등급부터 시속 322㎞를 넘는 F5 등급으로 나뉜다. 최대 풍속이 시속 177㎞를 넘는 F1 등급 토네이도는 이동식 주택이 뒤집어지거나 도로에 이동하던 차량이 날아갈 정도의 위력이다. F1 등급 토네이도는 매년 미국에서만 500건 발생한다. 이번에 켄터키를 할퀴고 간 토네이도는 F4 등급으로 기록됐다.

미국인들에게 토네이도는 봄마다 찾아오는 낯설지 않은 기상 현상이다. 하지만 겨울철에 이렇게 많은 토네이도가 상처를 남긴 것은 드문 일이다. 기상학자들은 따뜻한 날씨를 원인으로 꼽았다. 겨울철 이례적으로 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토네이도와 돌풍의 에너지원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동쪽의 고기압 전선과 서쪽의 차가운 저기압 전선이 미국 중부와 남부지역에서 충돌했다. 따뜻하고 습한 날씨 탓에 상승 기류가 조성되면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성층권의 강한 제트기류도 수평으로 불어야 할 바람이 수직으로 불도록 바꾸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기상학자들은 평가했다. 빌 번팅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폭풍예보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따뜻한 날씨 탓에 토네이도가 연료로 삼는 수분을 더 많이 머금게 됐다”며 “지금보다 추웠다면 비나 눈이 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겨울 미 중서부에선 기록적인 겨울 고온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미네소타의 미네아폴리스와 세인트폴을 아우르는 트윈시티 MSP 공항의 이달 낮 최고 기온은 섭씨 11.1도까지 올라갔다. 2014년 10.6도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겨울 기온이다. 더운 날씨를 연료로 삼은 토네이도는 강한 위력을 보여줬다. 이번 토네이도의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사상자와 주택 잔해는 3만피트(9.1㎞) 상공까지 날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강풍을 타고 단숨에 여객기 운항 고도까지 도달했다는 의미다.
지구 온난화로 기후 재해 늘 것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 때문에 이번 토네이도가 발생했다고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토네이도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선 더 많은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토네이도를 기록하기 시작한 1954년 이후 그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보고도 없다.

다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아 기후 재난이 장기적으로 늘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올여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지구 온도가 높아지면 극단적 기상 현상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거대한 폭풍인 허리케인 강도가 세지고 집중호우가 잦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극심한 가뭄에 산불이 잇따를 위험도 크다. 지구 기온이 1도 높아지면 기상 재난 위험이 5~20%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각국의 재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서도 최근 들어 토네이도 출현 양상이 바뀌고 있다. 미국에 상륙한 토네이도 숫자는 비슷했지만 이들이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더 짧아졌다. 1970년대에는 150일에 걸쳐 토네이도 피해가 보고됐지만 이젠 그 기간이 100일로 줄었다. 더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10년 전만 해도 30개 넘는 토네이도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은 2년에 한 번 벌어질 정도로 흔치 않았다. 최근엔 매년 두세 차례 이런 토네이도를 경험하고 있다. 하롤드 브룩스 국립해양대기청 선임연구관은 “토네이도가 부는 날이 이전보다 줄었지만 한꺼번에 많은 토네이도가 찾아오는 날은 늘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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