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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우토반에서 배운 하르츠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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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토반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고속도로는 속도 무제한으로 유명하다. 독일에 여행을 다녀온 분들은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달려봤다는 경험을 얘기하곤 한다. 그런데 필자에게 아우토반은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은 유난히 연식이 오래된 차로 교정을 오갔다. 어느날 세미나 참석차 다른 도시로 가는 교수님 차에 제자 몇 명이 동승하게 됐다. 아우토반 위에서 한 학생이 “교수님 왜 새 차로 바꾸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교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세금과 연금 그리고 보험”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대부분의 독일인은 직장을 가진 후 월급의 약 40~50%를 세금 등으로 내니까 여유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당시는 독일 통일 직후라서 동독에 지원을 해야 하니 서독에서 더 많은 세금과 기금을 징수하던 시기였다.

귀국 후 재정과 복지에 대한 논쟁을 볼 때마다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재정은 세금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복지예산을 증액하려면 당연히 독일처럼 국민들의 부담액이 올라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예산을 늘린다는 뉴스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세금이 덩달아 오르겠군. 이러다 예전 독일처럼 근로자 월급의 절반이 세금으로 지출되겠네”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독일 근로자들이 데모를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그들도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불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독일인들은 퇴직 후 삶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독일어 학원 강사는 은퇴 후 멕시코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꿨고, 지도교수는 도심 밖 연구실에서 책을 쓰는 것을 소망했다. 모든 게 은퇴 후에도 재정적으로 안정돼야 가능한 일이다. 궁금증은 곧 풀렸다. 그들이 평생 지출한 세금과 연금으로 은퇴 후에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빈궁하지 않을 만큼 평생 연금이 지급된다고 했다. 의료서비스 역시 복잡한 수술까지 모두 무상으로 제공된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독일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연금·건강보험 등의 부담이 과중해져 사회보장 체계의 붕괴 위험마저 경고됐다. 그때 등장한 진보적인 사회민주당 출신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과감하게 ‘하르츠 개혁’을 시행했다.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특히 개혁안 중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통합하는 방안을 복지 혜택의 축소로 받아들였던 기득권층의 큰 반발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뢰더는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인기가 떨어져 2005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그 후 집권한 메르켈 정부도 하르츠 개혁을 이어받아 계속 추진했고,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독일을 만들어냈다.

정치인이 인기를 잃고 실각하는 결과를 야기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과연 몇 명의 정치인이 단기적으로는 국민들에게 돌팔매를 맞아도 장기적으로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여당 대통령 후보가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고 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에 일부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휘둘려서는 안 된다. 폴 크루그먼이 저술한 《미래를 말하다》에 의하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막대한 전비를 감당하느라 국가부채 비율이 130%에 달했는데, 그 후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이민 그리고 경제성장 덕분에 국가부채 비율을 35%로 떨어뜨렸다. 반대로 한국은 내년부터 인구가 급속히 줄어든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세금이 덜 걷히면 늘어나는 재정지출 요인을 국가부채로 메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치가 경제에 일부 개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인기를 얻는 방향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들도 함께 잘사는 방향이어야 한다. 더욱이 통일과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통일재원을 준비해놨는지 아니면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들이라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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