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경제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인플레이션’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스페인,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약 2년간 지속된 양적 완화 정책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물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공급망 대란과 에너지 가격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등장으로 세계 경제는 다시 암초에 부딪혔다.
유럽연합(EU)의 인플레이션은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EU 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유로존 19개국의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 4.9%로 199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현재의 물가 상승은 공급망 병목현상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하며 내년까지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의 긴축 정책이 유로존을 또 다른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중앙은행의 무책임한 통화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책이 독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한스 베르너 진 뮌헨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출간한 《넘치는 돈, 위험한 유로존(Die wundersame Geldvermehrung)》을 통해 ECB의 방만한 통화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진 교수는 유럽연합이 이미 ‘중증 환자’가 됐다고 경고한다. 심각한 위기가 이어지고 경제가 흔들리는 동안 유럽중앙은행이 ‘돈 찍어내는 인쇄기’ 역할만 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분석한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유럽중앙은행의 대규모 국채 매입과 경기 부양책은 ‘마이너스 금리’ ‘막대한 국가 부채’ ‘인플레이션 위협’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2007년과 2008년 발생한 금융 위기와 그것이 초래한 유로존 재정 위기, 그리고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위기 등 유럽연합은 세 번의 연이은 위기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계속되는 위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은 다양한 구제책, 경기 부양책,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진 교수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럽 국가들의 부채는 2008년에서 2021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통화량은 7배 증가했고 이자율은 폭락했다. 이런 상황은 예금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일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체제 자체를 좀비화할 위험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거대 인플레이션(The Great Inflation)’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은 인플레이션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고,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앞으로 극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이 발생한다면, 유럽중앙은행은 그것을 통제하거나 관리할 마땅한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결국 중산층의 소득과 부는 잠식되고 중대한 정치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진 교수는 유럽연합이 통화 안정을 위한 확고한 통화정책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유로화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번영과 평화’라는 유럽연합의 꿈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