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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시기상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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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노동이사제는 노동계가 강력하게 주장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사항으로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재계 및 야권으로부터 반발도 만만찮아 지금까지 별다른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여당 대선후보가 최근 노동단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조속히 추진할 것을 약속하고, 여당이 법안 강행 처리에 나서면서 노동이사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이사제란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경영의 투명성과 의사결정의 민주성을 높이고 협력적 노사문화가 정착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든다. 노동이사제는 원래 계급타협을 목적으로 독일에서 유래된 제도인데, 1970년대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시가 5년 전에 독일식 경영참가제도를 벤치마킹해 도입한 이래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이 제도를 도입, 시행해오고 있다. 공기업의 독단을 막고 투명경영을 추구한다는 이 제도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우리나라의 법제도나 노사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할 때 부작용 또한 적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첫째, 우리나라의 기업 거버넌스 형태와 노사관계는 노동이사제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등과는 매우 다르다. 이들 국가의 경우에는 산별체계를 기반으로 한 협력적 노사문화,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이원적 이사회 구조와 조합주의(corporatism)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별 체계와 대립적 노사관계, 일원적 이사회 구조를 가진 우리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노동이사의 경영참가로 인해 노사갈등이 커질 게 뻔하다. 공공기관 노조의 입김이 더 세지면서 노조와의 갈등과 대립으로 노동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될 수 있다.

둘째,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경우 기존의 노사협의회 및 노동조합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도 의문이다. 노사협의회나 노동조합을 통한 경영참여도 노동이사제에 비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그 역할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과는 별개로 노동이사제가 존재할 경우, 노동이사의 조합원 겸직 여부를 비롯해 노사협의회와의 권한 중복에 따른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역할 분담 등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오히려 조직 간 이기주의와 보신주의를 조장하게 되고 신속한 의사결정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

셋째,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동이사제의 경우 노동이사에게 부여되는 권한이 독일을 능가한다. 현행 법체계상 노동자의 실질적인 경영참여는 비등기임원까지 가능한데, 이 수준을 넘어 근로자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주주권과의 충돌이나 다른 채권자들과의 형평성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기존의 법질서와 충돌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는 공기업 레벨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향후 민간 부문으로 확대될 것에 대비해 근로자 측에 주주와 동일한 이사선임권을 부여하는 방식보다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노동이사제를 둘러싸고 찬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제도 도입에 앞서 이해관계자 간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에 앞서 서로 상충하는 법제도에 대한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 정권 말기, 대선을 앞둔 과도기에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또 다른 갈등을 조장하게 될 것이 뻔하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파급효과가 크고 긴급한 민생현안이 아닌 만큼 서두를 것이 아니라 차기 정부의 과제로 남겨두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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