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연말을 맞아 일제히 해외 출장에 나섰다. 글로벌 거래처를 점검하고 신사업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장기화, 공급망 대란 등의 변수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한층 중요해졌다는 것이 주요 그룹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12일 만에 다시 해외 가는 이재용
이 부회장은 6일 밤 10시께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출장길에 올랐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에 출석한 뒤 바로 출장길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출국 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출장 목적 등에 대한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잘 다녀오겠다. 목요일(9일)에 들어온다”고만 밝혔다.이번 출국은 지난달 24일 열흘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지 12일 만이다.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해외 출장을 떠나는 것은 이 부회장의 엄중한 현실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미국 출장 직후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와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찾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2019년 2월 UAE 두바이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와 회동하며 정보기술(IT), 5G 분야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같은 해 9월엔 사우디에서 국가 개혁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이끌고 있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면담했다.
이 부회장이 장거리 출장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재판 일정이 변경되면서다. 법원 사정으로 매주 목요일 열리던 재판이 월요일로 앞당겨지면서 다음 공판 기일(16일)까지 9일간의 시간이 생겼다. 이 부회장의 다음 행선지로는 유럽이 거론된다. 서울중앙지법이 이달 말부터 내년 초까지 2주간 갖는 겨울철 휴정기를 이용해 유럽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임원급 등 기업의 필수 인력’에 해당돼 해외 입국자에게 적용되는 10일간 자가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다.
최태원 회장 또다시 미국행
최태원 회장도 지난 5일 올해 세 번째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워싱턴DC 교외 샐리맨더에서 6~8일(현지시간) 열리는 국제 포럼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TPD는 그간 범태평양 지역의 민간 외교와 정책 공조 필요성을 강조해 온 최 회장이 직접 만든 포럼이다.최 회장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투자와 관련해 “20년 동안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해왔고, 많은 돈과 연구개발 노력을 걸었지만 여전히 돈을 잃고 있다”며 “투자(CAPEX) 규모가 엄청나 가끔은 무서울(scared) 정도”라고 말했다. SK는 미국 포드와 미국 내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설립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최 회장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에 대해선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도전”이라며 “계획은 아직 없지만 이를 위한 전제조건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도 수시로 미국을 찾고 있다. 세계 양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을 점검하는 동시에 미래 모빌리티 사업 관련 투자처를 찾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공개된 일정만 따져도 올해 네 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지난 10월에도 약 3주간 미국, 유럽, 인도네시아 출장을 다녀왔다.
정 회장은 취임 후 첫 출장지로 지난 1월 싱가포르를 택했다. 현대차그룹이 싱가포르에 건설 중인 ‘글로벌 혁신센터’ 공사 상황을 점검했다. 4월엔 미국 로스앤젤레스 판매법인 등을 방문해 전기차 시장 전략을 마련했다. 6월과 7월엔 잇따라 뉴욕, 워싱턴DC 등을 찾아 미국 투자 계획 실행 방안을 구상했다.
송형석/김일규/남정민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