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이 다시 한번 원유 증산(감산 완화)을 중단하는 방침에 무게추를 기울였다. 코로나19의 신종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여파 때문이다. 앞서 유가를 낮추기 위한 미국 주도의 비축유 방출에 반발하던 사우디 등이 증산 철회를 위한 좋은 핑계거리를 얻은 셈이란 분석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은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OPEC 13개국과 10개 주요 산유국 협의체) 대표단의 익명의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주요 산유국들이 내달 1~2일 열리는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 확대 계획을 철회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논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OPEC+에서 사우디와 함께 양대 축을 형성하는 러시아의 경우 오미크론 변이 출현에 대해 아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향후 논의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주요 산유국들이 증산 중단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8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진 오미크론 출현 소식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방역 조치를 강화하면 원유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인도 등은 오미크론이 처음 확산한 남아프리카 국가에서 오는 여행객 등의 입국을 제한키로 했다.
실제 오미크론 공포에 국제 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26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장보다 13.06% 급락한 배럴당 68.15달러에 마감했다. 지난해 4월 이후 최대 일일 낙폭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는 북해산 브렌트유의 1월 인도분의 종가가 배럴당 71.59달러에 거래됐다. 이 역시 전장에 비해 11.53% 떨어진 가격이다.
지난해 상반기 OPEC+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대폭 줄였다. 이후 빠른 세계 경제 회복세에 따라 원유 수요가 급증하자 올해 8월부터 연말까지 하루평균 40만 배럴씩 증산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경제 재개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국제 유가를 계속 끌어올리자 미국은 OPEC+에 증산을 가속화할 것을 촉구해왔다.
OPEC+가 미국의 요청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일본, 중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과 함께 비축유를 시중에 풀겠다고 나섰다. 약 7000만 배럴 규모의 비축유가 방출 규모로 논의됐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이에 반발해 원유 증산 계획을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OPEC+ 산유국들의 반발 움직임에 오미크론 변이 발현이 명분을 더해준 것이다. 컨설팅 기업인 라피던 에너지그룹의 밥 맥널리 회장은 "오미크론으로 인해 새로운 셧다운과 이동 등 여행 제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점은 시장의 상황 변화에 중요 요소"라고 진단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