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름값을 비싸게 받기 위해 정유회사들이 불법 행위를 했는지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인도 등 동맹국은 물론 중국에까지 비축유를 함께 풀자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물가 급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히는 유가를 잡기 위해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규제당국까지 동원해 기름값 조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정유·가스회사들의 반소비자적 행위를 조사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한에서 “한 달 전보다 휘발유와 옥탄 등을 섞은 차량용 휘발유 소매 가격은 올랐는데 혼합 전 휘발유 가격은 내렸다”며 “이런 격차를 통해 정유·가스회사들이 큰 이익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불법 행위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WSJ에 따르면 독립 리서치회사인 클리어뷰에너지파트너스는 지난 10년간 혼합 전 휘발유 가격이 하락할 때 차량용 휘발유 소매가격이 상승한 13개 사례를 제시했다. 린드세이 크리작 FTC 대변인은 “이런 가격 차이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칸 위원장은 “석유와 가스 시장 내 불법 관행을 조사하고 불법적인 합병 억제 조치와 시장 남용 행위가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FTC가 불법 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리서치업체인 래피던에너지그룹은 “바이든 대통령의 서한에서 인용한 혼합 전 휘발유 가격과 휘발유 소매 가격의 차이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휘발유 소매가는 갤런당 평균 3.38달러, 원유 가격은 배럴당 평균 81.48달러였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경제가 회복되면서 1년 전보다 70%가량 뛰었다. 유가 급등으로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올랐다.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의 최고치였다.
○“비축유 같이 풀자” 요구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맹국 등을 상대로 비축유를 함께 풀자고 제안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과 중국 인도 일본 등에 원유 비축분을 방출하자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방안의 하나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이와 관련,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이 최근 몇 주간 한국 중국 일본 등 국가들과 비축유 공동 방출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중국은 이날 전략 비축유 가운데 일부를 방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국가식량물자비축국은 “방출량과 시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적절한 시기에 웹사이트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일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국가들의 입장은 전해지지 않았다. 백악관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다른 국가들과 나눈 얘기에 대해 함구했다.
지난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날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바이든 행정부가 물가의 핵심 요소인 유가를 잡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강수에 유가 상승세는 한풀 꺾인 모양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2.97% 하락한 배럴당 78.3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7일 이후 최저치다. 국제 유가는 여전히 올해 초보다 60% 가까이 오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