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주인공 중 한 명인 조조만큼 평가가 계속해서 바뀌는 인물도 없다. 시대에 따라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었다가 ‘지략과 용인술을 두루 갖춘 영웅’이었고, 때로는 ‘민중적인 혁명아’, 때로는 ‘역적’이자 ‘학살자’로 평가받았다.
김학주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가 쓴 《조조의 재발견》은 ‘중국 전통문학을 발전시킨 시인’으로서 조조를 평가한다. 김 교수는 “시인에 의한 제대로 된 시의 창작이 조조로부터 시작됐다”며 “중국의 전통문학이 조조로부터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조조가 모든 면에서 잘못 평가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조조는 중국에서 그의 정치적·군사적 업적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인간성까지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왔다”며 “그처럼 좋은 시를 쓴 시인이 간사한 인간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책은 조조의 재평가를 위해 조조의 일생을 처음부터 다시 서술한다. 조조의 할아버지 조등이 환관으로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잘못을 저지른 일 없이 나랏일을 잘 처리했다거나, 조조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간악함을 드러내는 사건 중 하나는 여백사 일가족 몰살이다. 조조는 동탁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뒤 자신의 아버지 조숭과 의형제 사이인 여백사 집에 머물게 됐는데, 집 뒤에서 칼 가는 소리를 듣고는 가족을 무참히 죽인다. 하지만 조조의 전기를 보면 이 사건은 진실과 거리가 먼 허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조조를 야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극적 장치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조조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손자 모두 학문을 갈고 닦고 무술을 익혀 백성을 돌보려고 애쓴 훌륭한 임금이었다”며 “조조에 대한 평가는 다행히 중화인민공화국 시대에 이르러 크게 바뀌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조조가 지닌 문학적 재능에 주목한다.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 《삼국지》를 근거로 “조조는 학문과 문학을 좋아해 창을 들고 싸우는 중에도 책을 늘 곁에 뒀다”며 “산에 올라가서는 반드시 시를 읊고 악기로 반주하며 노래했다”고 강조한다.
책에 따르면 조조 이전의 시는 작자가 어떤 뚜렷한 목표 추구를 위해 창작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각별한 일이나 물건을 보고 또는 남의 부탁을 받고 지은 것이었다. 작가가 자진해 지은 작품도 문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조조는 인간과 세상의 혼란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시와 글에 담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 손자와 주변에 모여든 여러 문인이 조조의 문학을 계승 발전시켜 중국 전통문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비와 손권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박하다. 유비는 전쟁을 잘하는 재주 있는 장군임에는 틀림없지만 지조가 없고 꿋꿋하지 못한 인물임이 분명하다는 것. 손권에 대해선 “유비와 손잡고 친하게 지내다가도 다시 싸우는 짓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며 곧은 임금이 아니었다고 했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도 사람마다 평가가 엇갈리는데, 먼 옛날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더더욱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사진이나 영상, 기록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료(史料)를 근거로 두느냐에 따라 완전히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책이 너무 조조에 우호적인 쪽으로 기운 것은 아닌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저자는 “중화인민공화국에 들어와서는 마오쩌둥 주석이 조조를 매우 높이 평가하는 바람에 궈모뤄와 젠보짠 등 많은 학자가 그 뒤를 따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 의도와 배경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다. 사실 문필가이자 독재자였던 마오쩌둥이 조조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고 보는 학자가 적지 않다. 조조는 정사(正史)에도 여러 악행이 기록돼 있는 등 여전히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시인 조조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장점이지만 조금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조를 재평가했다면 더 좋았을 책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