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사들이 메타버스(3차원 가상현실) 사업을 앞다퉈 추진하고 있다. 메타버스 내 아바타의 모습으로 보험 상담을 하거나, 안전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보험업계 신(新)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고객을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해외의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고객 접점 확대 취지를 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 모형을 개발하는 등 신사업으로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MZ세대를 겨냥한 메타버스 사업 확장에 가장 적극적인 추진안을 내세우고 있는 국내 보험사는 DB손해보험이다. DB손보는 오는 18일부터 미국 메타버스 플랫폼 '개더타운'에서 대면 상담과 동일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서 DB손보는 지난 8월부터 약 한 달간 보장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 상담 서비스를 시행한 바 있는데, 반응이 좋다 보니 사업을 확장하기로 한 것이다. 상담 서비스 구성도 추가된다. 내년에는 고객상담센터를 연계한 서비스로 메타버스 사업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DB손보는 지난달 국내 보험사 최초로 메타버스에서 고객이 아바타를 통해 안전체험을 하고 안전 수칙을 인지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를 위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협업해 가상공간에서 캠핑 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안전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미 캠핑 월드'를 열기도 했다. 친숙한 제페토 앱을 통해 아바타를 만든 뒤 가상공간에 마련된 캠핑장에서 안전에 대해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가족과 여행을 떠난 것처럼 캠핑장에 입장한 후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DB손보는 추후 계절별 안전 체험 사례를 추가하는 등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흥국생명도 지난 8월 국내 생명보험사 중 최초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 메타버스 얼라이언스는 메타버스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민관협력체로 삼성전자, SK텔레콤, 우리은행 등 300여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과 협력해 가상현실에 익숙한 MZ세대 대상 서비스 발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흥국생명은 메타버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금융상담,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한 헬스케어 서비스, 반려동물 친밀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지난 9월에는 신한라이프도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합류하면서 메타버스와 보험시장 간 연계 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국내 보험사들이 이제 메타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해외에선 이미 보험상품에 접목한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 필그림 헬스케어, 메디케어, 블루크로스 블루쉴드 등 미국 비영리 건강보험 회사들은 대표적이다.
현재 가상현실 원격 의료 서비스를 보장해주는 단계까지 나갔다. 이들 보험사는 가상현실 내에서 물리치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원격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 인슈어테크 기업 윙슈어는 AI, 머신러닝, AR 등 신기술을 통해 보험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지역 농업인들에게 맞춤형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가상현실에서 사용되는 신기술을 기반으로 농작물 피해 규모를 확인하고 이에 적합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게 윙슈어 측의 구상이다. 윙슈어는 일단 가계 70%가량이 농업에 나서고 있는 인도를 기점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스타트업 유라이프는 보다 발전된 방식의 메타버스 서비스를 내놓은 사례다. 유라이프는 단체보험에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을 삽입해 가입자들이 팀을 구성해 경쟁하거나 기록을 공유하고, 앱이 제시하는 건강관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고객은 앱의 내부세계인 '유니버스'에서 달리기, 명상 등의 임무 완료 시 특정 브랜드에서 바우처로 교환할 수 있는 유코인을 받게 된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실제로 유라이프 단체보험에 가입한 직원 중 약 60%가 유라이프 앱을 통해 건강관리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험의 게임화를 통한 추가 서비스 제공과 고객 경험을 증진시킨다는 면에서 기존 보험 상품과 차별성이 크다는 게 업계 평가다. 유라이프는 단체보험상품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지난 7월에 7000만달러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메타버스 기반 기술의 발전으로 향후 활용성과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내 보험사도 새로운 상품과 사업모형 개발에 메타버스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현재 국내 보험사들이 추진 중인 메타버스 관련 사업이 고객 접점 확장, 고객의 건강관리 증진 등 근시안적인 사안에 국한돼 있어서다. 구체적으로는 국내외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의 기술 중 보장 가능한 서비스를 발굴해 보장하고, 헬스케어 앱의 고도화와 보험상품 연계성 강화를 추진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조영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시장 내 메타버스의 영향력은 더욱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보험사는 메타버스 플랫폼과의 협업을 통해 플랫폼 내에서 건강관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게임을 제공하는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며 "더 나아가 메타버스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메타버스로 인해 발생하는 새로운 리스크를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는 노력도 수반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