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왼쪽)와 윤석열 후보(오른쪽)가 국가 재정에 대한 인식차를 드러내며 충돌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는 이 후보는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 온당하냐”며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했다. 윤 후보는 “1000조원의 국가부채는 미래 약탈”이라고 각을 세웠다. 두 후보 모두 자신의 대표 공약으로 ‘성장’을 내세웠지만 방법론에선 차이를 보였다. 이 후보는 ‘공정한 기회’를, 윤 후보는 ‘민간 주도’를 성장정책의 수단으로 강조했다.
李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 옳은가”
이 후보는 7일 페이스북에서 “윤 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반대를 당리당략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재정 역할론’을 적극 주장하는 그는 “윤 후보는 손실보상금과 재난지원금의 차이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라는 부자가 되고 있는데 국민은 지출여력이 없어 지갑을 닫고 있다”며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고 있는데 관아 곳간에 쌀을 잔뜩 비축해두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전날 윤 후보는 후보 선출 후 첫 일정으로 서울 가락시장을 찾아 재난지원금에 대해 “몇% 이하는 전부 지급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 5일 후보 수락연설에선 이 후보를 겨냥한 듯 “1000조원 넘는 국가부채는 미래 약탈, 악성 포퓰리즘은 세금 약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尹 “빚만 떠넘기는 재정 포퓰리즘 중단”
이 후보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부자 나라와 가난한 국민’을 언급하면서 현금지원 정책을 주장해 국가재정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는 기획재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기업에 세금 수십조원을 투입하는 건 투자고, 국민을 직접 지원하는 건 재정 낭비냐” “국민을 지원하면 수요로 이어져 지속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이 후보의 재정 역할론의 근거다.코로나19로 인한 대전환기에 기본소득 등 정부의 재정 역할 확대는 필연적이라는 게 이 후보의 입장이다.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기 위한 탄소세, 국토보유세 도입도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야권은 물론 주류 경제학계로부터 ‘퍼주기’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구상에 대해 윤 후보는 최근 경선 토론회에서 “얼토당토않다”고 평가했다. 증세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증세를 통해 (복지를) 밀어붙이면 뒷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선 “세금을 걷어서 (전 국민에게) 나눠줄 거면 애초에 안 걷는 게 제일 좋다”는 말도 했다.
윤 후보는 이 후보의 공약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선 비전발표회에서 “시장의 생리를 외면한 정부 개입으로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짓은 절대 안 하고, 무분별한 국가 주도 산업정책과 미래 청년 세대에 빚만 떠넘기는 재정 포퓰리즘도 즉각 중단하겠다”고 공약했다.
李 “공정성장” 尹 “민간 주도”
다만 이 후보는 최근 기본소득 대신 성장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중도층 공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출범식 연설에서 “1호 공약은 성장의 회복”이라고 선언하고 기본소득에 대해선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에 부정적인 중도층 여론을 고려하는 동시에 이낙연 전 대표 지지자를 끌어안기 위한 행보다.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성장정책에서 ‘공정성’을 강조하며 윤 후보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전환적 공정성장’을 내세운 그는 “소수에 집중된 자원과 기회를 공정하게 배분해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만들겠다”고 했다.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력한 징벌배상을 통해 공정성장을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윤 후보 역시 후보 수락연설에서 “대한민국 성장엔진을 다시 가동하겠다”고 외쳤다. 다만 그는 “과거의 국가 주도 경제로 돌아갈 수는 없다”며 “지금은 민간 주도로 제2의 도약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후보가 주장한 성장정책과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의 창의와 혁신”이라며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고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업에 지원을 집중하겠다”고 공약했다.
고은이/성상훈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