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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자·해시계…인사동 출토 유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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ㅸ(순경음 비읍), ㆆ(여린히읗), ㅭ(리을여린히읗)…. 전시장에 들어서자 옛 한글 자모가 새겨진 손톱만한 금속 조각들이 관객을 맞았다. 지난 6월 서울 인사동 재개발구역에서 극적으로 발굴돼 화제를 모은 조선 전기 한글 금속활자들이다. 400여 년간 땅속에 묻혀 있었는데도 활자들은 주조 당시의 정교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활자들을 품고 있던 깨진 항아리만이 그 옆 바닥에 놓여 낡은 모습으로 그간의 세월을 증언하는 듯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3일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인사동 출토 유물 공개전’을 개막한다. ‘인사동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 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에서 나온 한글 금속활자와 해시계 등 유물 1755점 전체를 출토 5개월 만에 일반에 공개하는 전시다. 유물을 발굴한 수도문물연구원이 박물관과 공동으로 마련했다.

전시 1부 ‘인사동 발굴로 드러난 조선 전기 금속활자’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법으로 만들어진 한글 금속활자 600여 점(사진)을 비롯한 1300여 점의 활자를 만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세종 연간 갑인년(1434년)에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 48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1796년 3월 17일자 정조실록에 정조가 “세종조에 주조한 갑인자를 사용한 지 300여 년이 됐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로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아 오랫동안 쓰인 글자지만, 현존 실물 활자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당시 인쇄한 책과 활자의 서체 및 크기를 비교해 유물 중 총 304자의 주조 시기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이번에 출토된 활자 중 ‘火(화)’자와 ‘陰(음)’자 등은 1435년 갑인자로 찍은 《근사록》과 모양이 같은데, 이를 통해 48점을 갑인자로 판명했다. 세조 연간에 만든 을해자(1455년) 42점과 을유자(1465년) 214점은 각각 《능엄경》(1461년)과 《원각경》(1465년)을 통해 연대를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전시장에서 직접 보는 활자들은 책을 찍어내기 위해 만든 만큼 육안으로는 세밀한 부분까지 확인하기 어렵다. 전시장 여러 곳에 비치된 확대경과 사진을 담은 휴대용 컴퓨터를 이용하면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활자 주조를 담당했던 주자소의 현판과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한 연혁이 적혀 있는 ‘주자사실 현판’도 전시장에 나왔다.

2부 전시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와 조선 전기 천문학’에서는 해시계와 자동 물시계 부품 등 기록으로만 전하던 국보·보물급 유물이 관객을 반긴다. 1437년(세종 19년) 왕명으로 제작된 천문시계 일성정시의는 《조선왕조실록》에 제작됐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일부 모습을 드러냈다. 낮에는 해시계로,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한 시계로 쓰인 도구다. 고궁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해시계 ‘소일영(小日影)’이 그 옆에 있어 이를 참고하면 전체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소일영의 전체 모습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 자동 물시계 부품인 ‘일전(一箭)’도 전시장에 나왔다. 직사각형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부품인데, 물시계에서 시간을 알려주는 인형이 작동하도록 구슬을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개인화기인 승자총통(1583년) 1점과 소승자총통(1588년) 7점 등도 전시됐다.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국민적 관심을 감안해 작은 조각까지 포함해 출토 유물 전체를 공개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2월 3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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