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지난달 31일 폐막한 로마 정상회의에서 ‘탄소제로 이행 시간표’ 채택에 사실상 실패했다. 지구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키로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을 뿐, 핵심 사항인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설정’이나 ‘탄소중립 달성 시기(2050년) 합의’ 등은 모두 ‘물음표’로 남겨뒀다. 탄소중립 문제를 본격 논의할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성공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G20 정상들이 탄소제로 시간표 합의에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온실가스 배출량 1·3·4위국인 중국 인도 러시아가 합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이들의 거부 논리는 명확하다. 제조업 비중이 큰 자신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압박하는 것은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에 다름 아니며, 이 때문에 선진국보다 유연한 탄소중립 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은 탄소중립 달성 시기의 경우 2050년이 아니라 ‘세기 중반께’로, 석탄발전 폐지 시기는 2030년이 아니라 ‘가능한 한 빨리’로 각각 두루뭉실하게 표현했다.
이쯤에서 한국도 탄소중립 계획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글로벌 차원의 시간표 채택이 사실상 무산된 마당에 한국만 과속하고 폭주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그 속도가 미국 등 선진국보다 2~3배나 빨라 제출 전부터 ‘무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더구나 그런 목표 달성에 1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술적으로도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제조업 비중이 큰 산업 구조상 이런 폭주가 재앙적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임기가 반 년여 남은 정부가 대못 박듯이 서둘러 결정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상회의때 ‘담대한’ 탄소중립 계획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체면을 세웠으면 됐다. 이제부터는 땅에 발을 딛고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다행히 유엔에 제출한 탄소중립 계획을 재조정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저탄소·고효율’ 원전 기술 보유국이다. ‘탈원전·탄소중립 병행’이라는 미망(迷妄)에서만 깨어나면 탄소중립은 얼마든지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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