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국내 주식시장을 휩쓴 테마를 꼽을 때 ‘수소’를 빼놓을 수 없다. SK, 현대차, 롯데, 두산그룹 등 국내 대기업은 수소경제 분야에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 중 수소 관련 사업에서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세계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우위에 있는 기업은 더 적다. 전문가들이 수소 관련주에 투자할 때 해외 주식도 눈여겨보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미국의 수소 대장주인 플러그파워는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밸류체인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창립 이래 24년간 수소 한 우물만 팠다는 점에서 다른 업체보다 기술적으로 앞서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들어 주가가 부진한 흐름을 보였지만 지난달 부활에 성공했다. 세계적으로 수소경제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플러그파워가 높은 실적 가이던스를 제시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월 한달간 50% 급등
플러그파워는 수소 생산·저장·운송·활용 등 수소경제 밸류체인 전반을 아우른다. 전기분해를 통해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기술, 액화 수소를 만들어 저장하는 기술, 연료전지를 이용해 수소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기술 등을 모두 갖고 있다.아마존, 월마트 등 유통 기업에 수소지게차를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수소지게차, 수소연료전지, 그린수소 등을 고객사에 납품하고 있다. 대부분의 수소 관련 기업이 기술 개발 단계인 것과 비교하면 한참 앞서있다는 평가다.
수소경제가 최근 들어 조명받았기 때문에 플러그파워를 신생 기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997년 설립된 플러그파워는 1999년 나스닥시장에 상장됐다. 상장 첫날 주가는 현 주가의 5배 수준인 160달러였다. 닷컴버블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 3월에는 장중 1565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플러그파워 주가도 추락했다. 2018~2019년에는 주가가 1~2달러대에 머물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가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수소 관련 정책이 쏟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지난 1월 고점(73.18달러)을 찍었지만 이후 9월 말까지 65.10% 급락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기술주가 조정을 받는 와중에 지난 3월 회계상 오류가 발견되면서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
부진한 흐름을 이어오던 플러그파워는 10월 들어 반등에 성공했다. 10월 한 달 동안 49.67% 급등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에도 3.13% 오른 38.2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25년까지 연평균 60% 성장"
지난달 ‘2021 플러그 심포지엄’을 열고 사업 확대 계획과 높은 실적 가이던스를 밝히면서 주목받았다. 플러그파워는 “2025년 매출 30억달러를 기록할 것”이라며 “2025년까지 연평균 60%대의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플러그파워의 연간 매출은 4억9600만달러로 추정된다. 2025년 매출이 올해보다 6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 셈이다.플러그파워는 심포지엄을 통해 △그린수소 생산 증설 △수전해 설비 판매 확대 △아시아 시장 진출 본격화 등을 발표했다. 2025년 사업별로 그린수소(수소·수전해 설비) 15억달러, 수소지게차 10억달러, 수소차/발전용 연료전지 5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올해 예상 매출이 그린수소 2000만달러, 수소지게차 4억7000만달러, 수소차/발전용 연료전지 1000만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그린수소 판매가 주요 사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세계적인 대기업과의 협업 계획이 쏟아진 것도 호재로 작용했다. 플러그파워는 유럽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와 수소 항공기 생산 및 공항 건설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자동차 업체인 르노그룹과 합작법인을 세우고 수소 밴·트럭 개발에도 나섰다. 지난달 6일에는 국내 기업인 SK E&S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아시아 수소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류 연구원은 "유럽, 아시아 지역의 주요 기업과 협력을 통해 다양한 국가, 다양한 지역으로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전력난도 강세를 뒷받침했다. 세계 각국이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는 날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변동성이 크다. 수소는 이와 같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꼽힌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가 남으면 수전해 방식으로 친환경 수소를 생산하고, 이후 전기가 부족할 때 수소연료전지 발전시스템을 통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러그파워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5550억달러 규모의 기후변화 예산안의 수혜주로도 꼽힌다. 예산안에는 그린수소 생산에 대한 보조금 지급 계획이 포함됐다. 스티븐 비어드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친환경 시대를 향한 정부의 입법 지원과 40억달러 규모의 현금 여력, 다른 기업과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플러그파워는 수소 시대로의 전환기에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말했다.
"수소 시대 최대 수혜주"
뚜렷한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플러그파워는 설립 이래 연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5억84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9년(영업손실 4800만달러)보다 적자폭이 10배 이상 커졌다. 올 상반기에도 1억38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플러그파워는 2023년부터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여전히 적자 상태이지만 증권업계에서 플러그파워를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다. 수소경제의 잠재력이 크고, 향후 그린수소와 수소연료전지 등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선두 기업인 플러그파워가 최대 수혜를 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세계 수소산업 규모는 2050년 2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에셋증권은 글로벌 수소경제 관련주 ‘톱픽’으로 플러그파워를 꼽았다. 신한금융투자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최선호주로 플러그파워를 제시했다. 함형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남은 하반기에는 세계 각국의 수소 관련 정책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정책 환경만 긍정적이라면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최근 주가 급등에도 상승 여력이 크다는 평가다. 금융정보 사이트 팁랭크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플러그파워 목표주가 평균은 44달러다. 현 주가 대비 14.97% 상승 여력이 있다. 15명의 애널리스트 중 12명이 매수, 3명이 중립 의견을 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