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업계에서 ‘슈퍼 메이저’라고 불리며 에너지 시장을 좌지우지해온 기업들조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 엑슨모빌이다.
지난 5월 엑슨모빌 이사회에서는 ‘표 대결’이 이뤄졌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이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등을 이사로 선임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경제성이 떨어지는 화석연료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론적으로 이 표 대결의 승리자는 엔진넘버원이었다. 친환경 기조에 동의하는 세 명의 이사가 엑슨모빌 이사회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엔진넘버원의 엑슨모빌 지분은 0.02%에 불과했지만, “엑슨모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이를 위해 친환경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큰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블랙록, 뱅가드 등 미국 대형 기관투자가의 지지를 받아 엑슨모빌과의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측 이사들이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엑슨모빌의 사업 방향성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엑슨모빌이 향후 5년 지출 계획을 논의하는 이사회에서 모잠비크, 베트남 천연가스 사업을 두고 이견이 제기됐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최근 세계 경제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수요는 폭증하고 공급은 부족해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엑슨모빌은 이미 모잠비크와 베트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엔진넘버원 측 이사들이 이 사업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 비해 이를 회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친환경 기조에도 반한다”는 게 반대 이유다.
WSJ는 “투자자들이 탄소배출을 줄이고 주주의 수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투자를 자제해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엑슨모빌 미래 사업의 운명을 알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자뿐만 아니라 환경론자들과 일부 관료도 엑슨모빌에 석유와 천연가스 감산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엑슨모빌은 올해 2월 탄소 포집·저장, 수소발전, 바이오에너지 같은 기술을 상업화하는 데 3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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