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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북방외교·신도시 건설 '치적'…12·12쿠데타는 '원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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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명암과 굴곡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군부 쿠데타의 주동자이면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직선제로 선출된 첫 대통령이다. 군사정권을 종식하고 문민정권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정부(1988~1993년)에서 정치·경제 민주화를 추진하고 북방 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었다. ‘물태우’ 등으로 비판받은 리더십과 임기 말 비자금 사건 등으로 한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꼽히지만, 공과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기 동안 연 8.5% 고속 경제성장
그는 1987년 13대 대선에서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선됐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여파로 도입된 대통령 직선제에서 ‘양김(김영삼 김대중)’의 분열 덕에 36.64%(828만2738표)의 저조한 득표율로도 대권을 거머쥐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시대 정신에 맞춘 시장경제 자율화’를 내걸고 시장 중심 경제정책을 펼쳤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경제는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조순 부총리 등 경제관료들에게 위임하다시피 했다. 노 전 대통령 임기 동안 경제는 연평균 8.5%의 고성장 가도를 달렸다.

청와대 출입기자 출신인 이장규 전 하이트맥주 대표는 저서 《경제가 민주화를 만났을 때-노태우 경제의 재조명》에서 “노태우 정부는 첨예한 노사분규 현장에도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았으며, 부실기업 정리와 금리자유화에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회고록을 통해 “정부가 관장해온 인허가제도 등 각종 규제 요인을 과감하게 축소했고 금융자율화, 공정거래제도 확산에도 힘썼다”고 밝혔다.

노태우 정부는 인천국제공항, KTX 등을 구상해 실행에 옮겼다. 국민연금 도입과 건강보험 전 국민 확대도 당시의 성과로 꼽힌다. 수도권 1기 신도시를 통한 주택 200만 가구 건설은 집값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방 외교, ‘범죄와의 전쟁’ 성과도
노태우 정부는 군부 독재에서 문민화 정권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분출하는 각계각층의 욕구에 대해 군 출신이면서도 ‘연성 리더십’으로 일관해 강경 권위주의로의 복귀 가능성을 없앴다”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 자유화에도 나섰다. 전두환 정부 시절 보안사령관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언론 통폐합에 관여했으나 집권 후에는 언론 통제에 이용됐던 언론기본법 폐지, 정기간행물 등록 완전 개방, 신문 구독료 자율화 등을 이끌어냈다. 한편으로는 ‘범죄와의 전쟁’ 등 강력한 범죄 대응 정책을 추진해 치안을 강화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북방 외교는 노태우 정부의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옛 소련 등 공산권 45개국과 수교해 한국 외교의 국제적 입지를 넓혔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남북 기본 합의서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불우했던 퇴임 후 시간
노 전 대통령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 있다. 한국갤럽이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시행한 여론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을 ‘나라를 가장 잘 이끈 지도자’로 꼽은 응답은 0.1%로 최하 득표를 기록했다.

군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하고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원죄가 있는 데다, 임기 말 비자금 부정 축재가 드러난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1995년에는 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 혐의로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재임 중 4100억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드러나 1997년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28억원을 최종 선고받았다.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복권됐다.

‘우유부단한 리더십’으로도 비판받았다. 취임 두 달 만에 집권 여당인 민정당의 총선 패배로 여소야대 국면에 놓여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렸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창당된 민주자유당이 끊임없이 계파 갈등을 겪으면서 노 전 대통령도 임기 중반부터 레임덕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유족이 26일 공개한 유언에서 노 전 대통령은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며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애 이루지 못한 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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