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지난 8월 가석방된 뒤 처음으로 임직원에게 낸 공식 메시지에서 ‘새로운 삼성’을 키워드로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1주기 행사를 계기로 이 부회장의 경영 보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의 인재 요람인 경기 용인시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이건희 회장 흉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삼성 측은 “생전에 ‘인재 제일’ 철학을 바탕으로 ‘창의적 핵심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써온 이건희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흉상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제막식에는 이 부회장 외에 사장단 5명만 참석했다. 제막식과 흉상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회장님께 삼성은 당신의 삶 그 자체였다”며 “현실의 한계에 굴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고 가능성을 키워 오늘의 삼성을 일궜다”고 추모했다. 또 “오늘 회장님의 치열했던 삶과 꿈을 향한 열정을 기리며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고 덧붙였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그룹의 중장기 비전과 새로운 삼성을 위해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이 이날 ‘이웃과 사회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언급한 것도 눈에 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이후 유일하게 참석한 공식 행사가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청년일자리 협약식이었다”며 “삼성의 기업 활동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강조하려는 의지가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이 조만간 적극적인 경영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외부 시선 등을 의식해 공식 현장 경영을 자제해 왔지만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를 언급하며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효도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제2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 부지 확정 등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내달 미국 출장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11월 말과 12월 초 사이에 이뤄진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 가능성도 주목된다. 이 부회장의 법적 리스크와 이 회장 별세 등으로 최근 3년간 삼성에선 대규모 인사가 없었다. 임원 인사도 최소폭으로 이뤄졌다. 삼성 안팎에선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에 미래 사업에 대한 이 부회장의 구상이 담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흉상 제막식에 앞서 오전 10시 경기 수원 선영에선 이 부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20여 분간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이 조용하게 치러진 것은 유족들의 뜻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문제뿐 아니라 이 부회장이 가석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대신 이날 사내 블로그에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했다. 사내 게시판에는 ‘세상을 바꾼 거인, 고 이건희 회장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으로 1주기 추모 영상과 신경영 특강 영상을 공개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25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5월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은 지 6년5개월 만이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