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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인류 수명 늘린 발명들, 그 짜릿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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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3월 초 겨울이 끝나갈 무렵, 미국 캠프 턴스턴에서 취사병으로 일하던 27세의 이등병 앨버트 기첼이 의무실을 찾아와 근육통과 고열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의사들은 독감으로 진단하고 그를 격리했다. 그래도 바이러스는 거침없이 확산했다. 4월께 1000명 이상이 감염되고, 38명이 사망했다. 수십 년 뒤 전자현미경이 발견되고 나서야 H1N1계 바이러스라는 게 밝혀졌다. 후일 ‘스페인 독감’으로 불린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세계 인구의 5%가량인 1억 명을 숨지게 했다.

사람들은 비관론에 빠져들었다. 1차 세계대전과 맞물려 영국 아기들의 기대 수명은 55세에서 41세로 급락했다. “팬데믹이 이 속도로 확산한다면 인류 문명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인류는 살아남았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는 ‘팬데믹 한복판에서 읽는 인류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인류의 기대수명을 늘려 온 혁신에 주목한다.

그런 혁신 가운데 백신은 첫손에 꼽힌다. 예방 접종은 1796년 에드워드 제너의 천연두 백신 이후 본격화됐다. 하지만 그 전과 후에도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그 자신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한 메리 몬터규 부인은 어린 자식을 둔 어머니였던 까닭에 천연두 예방에 관심이 많았다. 뛰어난 관찰력과 상류 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인두 접종을 보급했다. 제너도 어린 시절 인두 접종을 받았기 때문에 천연두 감염 물질을 주입하면 면역력을 생기게 할 수 있다는 원리를 알고 있었다. 백신이 개발된 후에는 사람들의 반대가 컸다.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백신 접종을 지지하며 백신법 제정에 힘썼고,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작품과 기고문을 통해 힘을 보태면서 서서히 분위기를 바꿔 나갔다.

저온살균 우유와 염소 소독을 한 수돗물도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19세기 중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미국 뉴욕의 아동 사망률은 50%에 근접했다. 미국 주요 대도시 사망자의 25%가량이 5세 이하였다. 주된 사인은 오염된 우유였다. 1850년 미국 제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도 집무실에서 우유를 마시고 사망했다. 1865년 루이 파스퇴르가 저온 살균법을 고안했지만 미국에선 50년이 지난 1915년부터 저온 살균법이 우유산업에 적용됐다. 로버트 밀험 하틀리, 프랭크 레슬리, 네이선 스트라우스 등의 연구와 폭로 덕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염소 소독법이 등장했고, 1900년부터 1930년까지 미국의 유아 사망률은 62% 하락했다.

자동차 안전벨트도 인류의 기대수명을 높인 혁신 중 하나로 꼽힌다. 1869년 아일랜드의 귀족 과학자 메리 워드는 시속 6.5㎞로 달리던 증기자동차에서 튕겨져 나가 사망했다. 자동차가 대중화된 1950년 초엔 자동차가 사망 원인 3위까지 올랐다. 20세기 미국에서 자동차로 인해 사망한 사람만 400만 명이 넘는 걸로 추정된다. 헨리 포드는 1956년 자사의 ‘크라운 빅토리’에 2점식 안전벨트를 넣으려 했지만 경쟁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운전의 위험을 부각시키면 자동차산업 전체에 해가 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소비자들도 시큰둥했다. 결국 스웨덴 볼보가 1959년 3점식 안전벨트를 기본으로 장착한 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볼보가 특허 기술을 공개했지만, 보급은 더뎠다. 1965년 미국 언론인이자 법률가인 랠프 네이더가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는 책을 펴내고, 1966년 의회에서 관련 법이 통과되고 나서야 안전벨트가 보급됐다.

과학·기술 분야 대중 작가인 저자는 백신부터 저온 살균, 약물 규제, 항생제, 안전벨트, 화학비료 등 인류의 수명을 2만 일(日) 늘린 발명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 얽힌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들려준다. 예컨대 영국 왕실이 하노버 왕가에서 계승자를 찾아야 했던 원인도 천연두에 있었다. 스튜어트 왕가의 계승자들이 모두 천연두로 일찍 숨을 거둔 탓이었다. 하노버 왕가에서 온 조지 1세가 어렸을 적 천연두에 걸렸다 나은 이력이 있는 점도 그가 왕위 계승자로 발탁되는 데 기여했다. 책은 400쪽에 육박하지만 재미와 정보를 모두 잡으며 끝까지 독자의 흥미를 놓치지 않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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