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스힐튼호텔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1’에 집결한 세계 경제계 리더와 투자 거물들은 한목소리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강조한 것처럼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오히려 머지않은 시점에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우드 “6개월 내 디플레 우려”
우드 최고경영자(CEO)는 기자와 만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을 일축했다. 오히려 “6개월 후에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과 같은 사재기 광풍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쌓이는 재고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사람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걸 잔뜩 사고 있다”며 “크리스마스 선물, 화장지 등 사려는 것을 모두 산 뒤엔 가격이 오히려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하지만 디플레이션이 미국 경제가 후퇴하는 ‘침체(recession)’를 의미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우드 CEO는 “완성차와 같은 전통 산업이 추락하고 있어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다”고 했다. 일부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기 둔화로 인한 가격 하락 우려가 있지만 사실은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또 최근 공급망 혼란에 대해선 “패닉일 뿐”이라며 조만간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차량 판매가 줄어드는 것은 공급망 혼란으로 인한 반도체 칩 부족이 아닌, 경쟁력 상실에 따른 수요 감소로 봤다. 이날 주식시장 개장 전에 나온 미국의 9월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1.3% 감소했다. 특히 자동차와 부품 생산이 7.2% 줄어든 영향이 컸다. 지난달 자동차 소매판매 대수는 1259만 대로 8월(1342만 대)보다 6%가량 감소했다. 우드 CEO는 “그들은 반도체 칩 부족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혼란 2년간 지속
자산운용사인 PGIM의 데이비드 헌트 CEO 역시 “경기 침체보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걱정이 되레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최근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 것은 일시적이라며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2024년에는 2%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너드 최고투자책임자(CIO)도 “공급망 혼란이 해결되면 가격은 내려올 것”이라며 “내년 밀컨 콘퍼런스에서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대한 논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그러면서도 당분간 공급망 혼란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이매뉴얼 로만 CEO는 “사무실에 앉아 뉴포트 비치를 보면 롱비치 항에 가려는 배 90척을 볼 수 있다”며 “우리는 분명히 공급망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헌트 CEO는 “앞으로 2년간 공급망 문제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바버라 험튼 지멘스 CEO도 “미국 내 공급망 붕괴 위기가 2023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했다.
“신용 사이클 아직 초기”
크레디트마켓(대출 시장)에 대해서도 아직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앤 월시 구겐하임파트너스 CIO는 “신용 사이클은 야구로 비유하면 아직 3회에 불과하다”며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은행들이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충당금을 늘리고 대출을 줄여 발생하는 신용 사이클 둔화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데이비드 브래킷 안타레스캐피털 CEO는 “크레디트시장이 허점투성이던 시절 우리는 연장전에 간 적도 있다”며 “지금은 많은 안전장치가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시장에서와 같이 금리 역시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칼 마이어 실버록파이낸셜 CEO는 “경기 침체가 아니더라도 Fed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등이 시작되면 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며 “금리 변동에 대비해 담보 등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