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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면 될 때까지…스타트업 생존 전략입니다” [나는 90년대생 투자심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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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잡앤조이=이정준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 미국의 유명 액셀러레이터 YC의 대표 포트폴리오 에어비앤비의 시작은 어땠을까. 이제는 너무나 대중화된 서비스지만 ‘낯선 사람을 낯선 사람의 집에서 재운다’는 발상은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디어였다. 그럼에도 YC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전당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대선주자들의 캐리커처를 붙인 시리얼을 판매하는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의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을 보고 투자를 집행했다.

하지만 돈, 시간, 인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 생존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벤처투자자 벤 호로위츠의 저서 ‘하드씽’을 보면 그의 아내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있을 때에도 런웨이가 3주 남은 라우드클라우드를 회생시키기 위해 일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만큼 스타트업에게 생존이란 그의 책 제목 그대로 ‘하드씽’이다.



이번 글에서는 아파트 단지, 오피스 내 물류 배달 로봇을 개발하는 ‘와트’의 생존기를 담아봤다. 담당 회사로 와트를 배정받고 처음 만난 건 2021년 1월이었다. 당시 와트는 건설사와의 PoC를 진행하기 위해 한참 로봇을 개발하는 중이었는데, 사내 보유 현금이 6개월 뒤면 바닥나 추가 투자를 모색하기 위해 미팅을 진행하게 됐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투자하려는 투자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인 만큼 현실적으로 필요한 투자금도 많아 남은 6개월 동안 제품을 고도화해 건설사 제휴를 완료한 뒤 투자를 받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그게 악몽의 시작일 줄은…

악몽의 시작은 제휴 일정이 5월 중순으로 밀리면서 시작됐다. 사내 현금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개월뿐이었다. 보통 투자를 받기 위한 프로세스 진행에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함을 고려할 때 죽음이 정말 눈 앞에 와있었다. 부랴부랴 PoC를 진행하면서 30여 곳의 후속 투자사들과 미팅을 진행했지만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대로 망하게 둘 수는 없었다. 투자사 입장에선 단순히 투자금 회수가 안 된다는 의미지만 피투자사 입장에선 모든 구성원이 주말 밤낮없이 인생을 걸고 몰입해서 일했는데 그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창업한 뒤 망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이 얼마나 정신적, 커리어적으로 손실을 주는지 알았기에 방관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었다.

“퓨처플레이 이정준 입니다. 물류 로봇 개발하는 팀이 있는데 검토 해보시겠어요?”

명함 첩을 열어 일면식도 없는 30여 명의 심사역들에게 콜드콜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표이사는 원룸 보증금을 빼 회사에 넣었는데, 망할 때 망하더라도 끝까지 해봐야 팀에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어떻게든 되게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와트 팀원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까봐 팀원 7명 모두와 식사 자리를 가지며 “내가 이만큼 팀을 믿고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자. 될 떄까지 해보자” 응원했다.

그렇게 46곳의 투자사에 연락한 결과, 모빌리티 인프라 관리 업체에서 후속 투자가 확정됐다. (와트의 사업 진행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SI회사였다.) 전화로 투자 확정 소식을 들었을 때 입사 후 가장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3달 간 밀려 있던 임금이 지급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임금이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에도 대표이사의 진정성을 보고 단 1명의 팀원도 이탈하지 않고 건설사와의 PoC를 놀라운 완성도로 마무리해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에게 생존이란 이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말도 안 되게 적은 리소스로 높은 성취를 만들어 온 와트 팀원들의 피 땀 눈물에 존경을 표한다. 이제 생존의 숨통이 트였으니 앞으로 또 어떤 성취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이정준 투자심사역은 한성과학고, 서울대를 졸업해 두 번의 창업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무기로 현재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스타트업과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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