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에도 세계를 향한 한국 기업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글로벌 ‘키 플레이어’에 올라서고 있다. 올해 한국의 수출 총액은 2018년(6049억달러)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6000억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경제계 관계자는 “해외 시장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일은 한국 기업인에겐 숙명과도 같다”고 말했다.
과감한 선행투자 나선 4대 그룹
삼성그룹은 과감한 선행투자로 미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된 직후인 지난 8월 새로운 중장기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2023년까지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 등에 240조원을 신규 투자하기로 했다.현대자동차그룹은 2025년까지 세계 3대 전기자동차 회사에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이다. 올해에만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를 잇따라 출시했다. 2025년까지 23종 이상의 전기차 모델을 포함해 44종의 친환경차로 승부하겠다는 방침이다.
LG그룹은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석유화학 고부가제품, 5G 등 전자, 화학, 통신 분야 제품 포트폴리오를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LG전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세운 합작법인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으로 전기차 파워트레인 사업 점유율을 높이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그룹은 ‘딥 체인지’(근본적 혁신)를 끊임없이 모색하면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그룹 각 계열사는 올해를 파이낸셜 스토리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원년으로 삼고, 재무제표 중심의 성장 전략을 신뢰와 공감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세계 M&A ‘큰손’으로 우뚝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키 플레이어’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엔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 기업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한국 기업이 1000억원 이상을 지급하고 해외 기업을 인수한 사례는 12건이다. 이 중 8곳이 미국, 2곳이 유럽 기업이다.한화솔루션은 지난 8월 프랑스 재생에너지 전문기업 RES프랑스 지분 100%를 7억2700만유로(약 1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RES프랑스는 4월 시장에 매물로 나온 뒤 많은 글로벌 기업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하지만 뒤늦게 인수전에 뛰어든 한화솔루션의 과감한 베팅에 판세는 확 달라졌다.
투자형 지주사인 SK㈜의 프랑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 이포스케시 인수는 한국 기업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시켜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바이오 CMO업계는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이 인수 시도조차 해보기 어려울 정도로 업종 내 벽이 높았던 분야다.
LG전자가 지난 7월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하게 된 배경에는 마그나의 적극적인 협력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의 보스턴다이내믹스(BD) 인수 역시 BD 측이 먼저 현대차 쪽에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위기에 강한 K기업
한국 기업들엔 위기에 더 강해지는 DNA가 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을 개척해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중국 시장이다. 풀무원은 중국 진출 10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외출이 어려워지자 온라인 매출이 급증했고, 풀무원의 간편식 스파게티와 두부 등 주요 제품이 불티나게 팔린 덕분이다. 10년 적자를 버티며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다.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은 투르크메니스탄 교통청이 발주한 27인승 대형버스 400대를 지난해 하반기 석 달에 걸쳐 모두 배에 실어 보냈다. 수출액은 700억원. 코로나19 대유행을 버텨내며 미개척 해외 시장을 뚫은 성과였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코트디부아르 국립암센터 건설사업을 치열한 경쟁 끝에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2024년까지 200개 병상의 암전문병원을 짓는 9400만달러(약 1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수주팀은 두 달여간 현지에 머물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해 발주처의 요구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맞췄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