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4’ 정유업체의 원유 정제시설(CDU) 평균 가동률이 1년6개월 만에 80%를 돌파했다. 작년 3월 코로나19 이후 석유제품 시황 부진으로 70%대에 머물던 공장 가동률이 글로벌 경기회복 기대감에 힘입어 이전 수준으로 올라선 것이다. 여기에 ‘유가 상승→석유제품 수요 증가→정제마진 개선’이라는 ‘3박자 공식’이 부활하면서 정유업계 하반기 실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제품 수요 급증에 공장 가동↑
6일 정유업계와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간 국내 정유업체들의 원유 정제시설 평균 가동률은 82~83%대다. 지난해 4월부터 올 8월까지 1년 넘게 70%대에 머물러 있던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개선세다. 가동률이 80%를 넘어선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작년 3월(80.7%) 이후 1년6개월 만이다.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정제설비 가동률은 90%대, 현대오일뱅크는 80% 중반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70%대 중반이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가동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정유사들이 가동률을 높이는 가장 큰 이유는 석유제품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회복에 힘입어 전 세계에서 석유제품 수요는 코로나19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제품 수요가 늘자 정제마진도 치솟았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2년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6달러까지 올랐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것이다. 지난 8월 넷째주(2.9달러) 대비 한 달 만에 106% 급등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실물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후행지표인 석유제품 가격을 대폭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반면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 남부 멕시코만의 석유시설 조업은 8월 말 허리케인 영향으로 아직까지 일부 중단된 상태다. 탄소중립을 내세운 중국은 정유업체에 할당한 수출쿼터를 줄이는 추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최근 원유 생산량을 추가로 확대하지 않기로 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유 빅4’ 하반기도 청신호
중국이 최근 극심한 전력난을 겪으면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한 것도 향후 원유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천연가스는 주로 겨울철 난방에 쓰인다. 한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LNG 수입대국으로 꼽힌다. 정유업계는 천연가스 가격 인상으로 대체재인 등유, 경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천연가스에 붙는 세금이 적기 때문에 등유, 경유가 완전히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게 되면 충분히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유가 상승 및 정제마진 개선세는 올 하반기에 이어 내년 초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올겨울이 예년보다 추울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경신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면서 석유제품 가격도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대규모 손실을 냈던 국내 정유 ‘빅4’ 실적도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한 해 연간 1조9179억원의 영업이익을, 에쓰오일은 2조1436억원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각각 1조5000억원, 1조원가량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정유 4사를 합치면 6조5000억원에 달한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