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산하 창원산업진흥원과 두산중공업이 공동 출자해 세운 하이창원은 내년 창원에 액화수소 생산 플랜트를 완공한다. 액화수소 플랜트는 기체 상태인 수소의 온도를 영하 253도까지 낮춰 액체 상태로 만드는 설비다. 하이창원은 2023년 초부터 액화수소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액화수소는 수소 경제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플랜트를 짓기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사실 5년간 막혀 있었다. 30여 개의 각종 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해 관련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산업통상자원부의 규제 샌드박스다.
창원시가 액화수소 생산 플랜트를 처음 계획한 것은 2016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추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기계·금속 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강영택 창원산업진흥원 본부장은 “생산과 운송, 충전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금속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 수소산업에서 창원 지역 기업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충전설비 등에 창원 기업들이 이미 진출한 가운데 생태계 완성을 위해 액화수소 플랜트가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액화수소는 운송과 저장에 유리해 수소 경제의 필수 아이템으로 꼽힌다. 수소를 담은 용기의 압력이 기화수소 대비 크게 낮아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액화수소를 이용하면 저장 용기의 무게가 크게 가벼워져 트레일러 한 대가 운송할 수 있는 수소량이 10배 이상 증가한다. 수소 자동차나 드론도 더 많은 수소를 충전할 수 있어 가동 시간이 2~10배 늘어난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폭발 위험도 크게 낮아진다.
창원시는 금속산업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두산중공업과 공동 출자해 지난해 4월 하이창원을 설립했다. 하지만 곧 뜻하지 않은 장벽에 부딪혔다. 국내에서 처음 짓는 액화수소 플랜트인 만큼 플랜트용 부품 등에 대한 세부 기준 자체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각종 플랜트는 생산품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안전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액화수소는 생산 과정에서 안전밸브부터 저장장치까지 30여 가지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어렵게 기술을 개발해 공장을 짓더라도 이 같은 기준 없이는 정부 허가를 받기 힘들다. 기준을 하나씩 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기업이 직접 기준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을 해야 하고, 해외 기준 및 사례와 관련된 데이터도 수집해야 한다.
고심을 거듭하던 산업부와 창원시는 규제 샌드박스행을 결정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제도 미비나 이익단체의 반발로 벽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의 규제를 단기간에 대폭 개선해 주는 제도다. 액화수소 플랜트 안건은 지난달 14일 산업부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서 규제 샌드박스 과제로 정식 확정됐다.
앞으로 액화수소 플랜트 건설을 위한 각종 표준은 생산 및 공장 가동 과정에서 도출된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 이미 액화수소 플랜트가 가동되고 있는 만큼 해당 기술 기준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하이창원은 내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본격적인 플랜트 건설 공사에 들어갔다. 2023년 초부터는 최초로 국산 액화수소 시판에 나선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대기업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효성하이드로젠과 린데수소에너지는 2023년 5월 울산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액화수소 플랜트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SK E&S도 2023년 말까지 대규모 액화수소 생산에 들어간다. SK E&S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액화수소 플랜트 가동이 대폭 앞당겨지면서 한국이 수소 경제를 주도할 기틀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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